빗속을 전속력으로… ‘건설 비계공’ 심진석, 우승 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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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공주백제마라톤 남자부 1위
마스터스 마라톤계 ‘낭만 러너’ 불려
시작부터 100m 선수처럼 전력 질주… 스포츠 시계 없어 오버페이스 우려도
여자부 전진희 3시간11분07초 우승

풀코스 남자부 우승자 심진석 씨(왼쪽), 여자부 우승자 전진희 씨. 공주=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풀코스 남자부 우승자 심진석 씨(왼쪽), 여자부 우승자 전진희 씨. 공주=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건설 현장 비계공으로 일하는 심진석 씨(29)가 2025 공주백제마라톤 남자 풀코스에서 우승했다.

나가는 대회마다 우승하며 마스터스 마라톤계에서 ‘낭만 러너’로 불리는 심 씨는 28일 충남 공주 시민운동장 앞을 출발해 백제큰길 일대를 돌아오는 코스에서 열린 2025 공주백제마라톤 남자 풀코스 부문에서 2시간35분43초로 가장 먼저 테이프를 끊었다.

주변 러너들에게 심 씨는 ‘연구 대상’이다. 심 씨의 트레이드마크는 초반부터 전력 질주다. 마라토너들 사이에선 가장 하지 말아야 할 ‘제1의 금기’를 매번 한다. 이날도 심 씨는 출발 총성이 울리자마자 100m를 달리듯 홀로 무리에서 치고 나왔다. 대개 풀코스 초반을 이런 식으로 뛰면 얼마 못 가 페이스가 처지기 마련이다. 심 씨도 레이스 초반부터 울상이었다. 그런데도 이날 심 씨의 페이스는 레이스가 끝날 때까지 3분 30초대(1km당) 밑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심 씨는 “많은 분들이 ‘오버페이스’라고 걱정하시는데 저는 적응이 돼 정신력으로 버틴다. (초반에) 천천히도 뛰어 봤는데 빨리 뛰는 게 더 편하다”고 했다. 이날 심 씨는 급수대에서 물이나 이온 음료를 한 번도 마시지 않았다. 심 씨는 “원래는 마시는데 오늘은 비가 와서 안 마셨다”고 했다.

심 씨에게는 러너들 대부분이 착용하는 스포츠 시계조차 없다. 스포츠 시계는 러너들에게 분당 페이스를 알려줘 페이스 조절을 돕는다. 케이던스(1분 동안 발이 지면에 닿는 횟수), 심장 박동수 등도 알 수 있어 풀코스 훈련의 필수품으로 꼽힌다. 그의 왼손목에는 대신 낡은 전자시계가 채워져 있었다. 심 씨의 동료는 “신기하죠?”라며 “(시계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도 안 된다. 케이던스가 뭔지도 모르는 친구”라고 했다. 심 씨는 “표지판에 쓰여 있는 km 표시를 보면서 페이스를 체크한다”며 웃었다.

이날 심 씨가 허리춤에 차고 뛴 힙색도 화제였다. 에너지 젤 여섯 개가 들어 있어 심 씨가 뛸 때마다 좌우로 크게 흔들렸기 때문이다. 온 힘을 쥐어짜듯 달리는 폼 역시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하는 다른 러닝 고수들과는 다르다. 심 씨는 “불편함은 없다. (에너지 젤이 담긴) 그게 없으면 저는 풀코스 못 뛴다”고 했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심 씨는 평일에는 오전 5시에 일어나 오전 7시에 출근한다. 오후 7시가 퇴근 시간이라 운동할 시간이 많지 않다. 그에게 기본 훈련은 4km 남짓한 거리의 출퇴근길을 뛰는 것이다. 심 씨는 “건설 현장에 다니기 때문에 안전화를 신고 뛴다. 가끔은 단련한다는 마음으로 일부러 안전화를 신고 장거리를 뛰기도 한다”고 했다. 모자란 훈련은 ‘실전’으로 대신한다. 심 씨는 “주말마다 나가는 각종 대회가 내게는 훈련”이라고 했다.

고교 시절 체력장을 할 때마다 늘 1등을 했다는 심 씨는 마라톤을 해보라는 친구들, 선생님의 권유로 2015년 9월에 마라톤에 입문했다. 동네 5km 대회에 나가 우승을 한 게 시작이었다. 그때부터 줄곧 크고 작은 대회에서 종종 입상했다. 하지만 메이저대회 1위는 이번이 처음이다. 심 씨는 “동아일보가 주최하는 3개 마라톤 대회(서울국제-공주백제-경주국제)를 다 신청했는데 공주백제만 접수됐다. 메이저대회 우승이 처음이라 너무 기쁘다”며 “내년 서울국제마라톤은 신청에 성공했다. 2시간29분이 목표다. 동아마라톤 ‘올해의 선수상’도 받고 싶다”고 했다. 여자부 풀코스에서는 전진희 씨(53)가 3시간11분07초로 우승했다.

2025 공주백제마라톤 풀코스 참가자들이 28일 출발지인 충남 공주 시민운동장 앞 고마나루길을 힘차게 달려 나가고 있다. 올해 공주백제마라톤에는 42.195㎞ 풀코스 등 5개 부문에 역대 최다인 1만2100여 명이 참가했다.
공주=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2025 공주백제마라톤 풀코스 참가자들이 28일 출발지인 충남 공주 시민운동장 앞 고마나루길을 힘차게 달려 나가고 있다. 올해 공주백제마라톤에는 42.195㎞ 풀코스 등 5개 부문에 역대 최다인 1만2100여 명이 참가했다. 공주=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올해 공주백제마라톤에는 42.195km 풀코스를 비롯해 △32.195km △하프코스(21.0975km) △10km △5km 등 5개 부문에 역대 최다인 1만2100여 명이 참가했다. 풀코스 출발부터 내린 이슬비는 레이스 후반 시간당 11mm까지 굵어졌다. 하지만 러너들은 “이 대회의 유일한 단점이 레이스 후반부로 갈수록 더운 거였는데 올해는 비 덕분에 시원해서 좋았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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