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중소기업의 해외 판로 개척을 지원하기 위해 카자흐스탄을 방문했다. 풍부한 자원과 젊은 인구를 바탕으로 높은 성장 잠재력을 지닌 카자흐스탄은 한류의 영향으로 ‘K-소비재’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기회의 땅이다. 현지 수출상담회에서 우리 기업들의 우수한 기술력과 제품에 대한 구매자들의 뜨거운 반응은 향후 유의미한 결과를 기대하기에 충분했다.
인상 깊었던 건 고려인 3세가 설립해 중앙아시아 최대 아이스크림 유통업체로 성장한 S그룹과의 만남이었다. S그룹은 한국형 편의점 사업을 공격적으로 확장하며 우리 제품을 현지 소비자에게 소개하는 중요한 창구가 됐다. 카자흐스탄은 CIS(독립국가연합) 경제공동체의 중심축으로, 1억8000만 명 이상의 잠재 소비자를 가진 거대 시장이다.
하지만 이런 기회 앞에는 ‘물류’라는 장벽이 여전히 우리가 극복해야 할 과제다. 항공 운송은 비용 부담이 크고, 해상 운송은 긴 운송 기간이 부담으로 작용한다. 특히 신선도가 중요한 식품류 수출은 더욱 큰 부담이다.
궁극적인 해법은 남북 철도를 연결해 유라시아 대륙을 잇는 ‘철의 실크로드’를 완성하는 것이다. 경의선·경원선과 중국횡단철도(TCR), 시베리아횡단철도(TSR)가 연결되면 물류비용 감소뿐 아니라 운송 기간도 대폭 단축할 수 있다.
남북 철도 연결 논의가 본궤도에 오른 것은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다.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과 6·15 남북공동선언을 바탕으로 철도 연결이 시작됐고,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남북 열차 시험 운행이란 결실을 보았다.
이후 박근혜, 문재인 정부에서도 꾸준히 시도된 남북 철도 연결은 북한의 비핵화 문제로 번번이 중단됐고, 현재는 논의 자체가 멈춘 상태다.
남북 철도 연결은 물류 효율성을 넘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안전장치이기도 하다. 중국과 러시아의 자본이 북한을 경유하는 철도 사업에 투자된다면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과 같이 군사적 긴장으로 중단됐던 남북 경협이 새로운 활로를 찾을 것으로 기대된다.
북한도 중국·러시아와 경제협력 구도가 형성된다면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철도 연결에 적극 응할 것으로 예상된다. 만일 미온적인 반응을 보인다면 이에 응하도록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철로는 물류 기능뿐만 아니라 관광 인프라의 기능을 갖고 있어 관련 국가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격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철의 실크로드 구축은 선택이 아닌 미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숙명이다. 현 정부와 22대 국회는 이념과 정쟁의 낡은 틀을 벗어던지고, 이를 최우선 국가 공통 과제로 설정해 모든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 국회 차원의 초당적인 헌신과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모처럼 소통하고 통합하는 국회의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드리는 것이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도리이다. 철의 실크로드는 단기간에 완성될 수 없다.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추진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기반을 정비해야 한다. 오직 국가의 미래만을 바라보는 통 큰 합의 정신을 발휘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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