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모텔서… 신고당하고도 범행
“스스로 수면제 먹고 돈도 줘” 주장
‘모텔 살인’ 김소영 수법과 판박이
‘약물 레시피’ 확산 모방범죄 우려
게티이미지
결혼정보업체 등을 통해 만난 남성들을 모텔 등에서 수면제로 재운 뒤 수천만 원을 뺏은 혐의로 20대 여성이 구속됐다. 경찰은 이 여성이 서울과 경기 일대에서 유사한 방식으로 최소 4차례 범행했다고 보고 여죄를 캐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이처럼 수면제 등을 조합해 상대방을 잠재울 수 있는 이른바 ‘레시피’가 무분별하게 공유되고 있어 모방 범죄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수면제 먹여 남성 4명에게서 4890만 원 갈취
27일 경기 의정부경찰서는 강도상해와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고모 씨(27)를 25일 구속했다고 밝혔다. 고 씨는 22일 의정부시의 한 주택에서 한 달가량 동거해온 30대 남성에게 약물을 먹여 재운 뒤 자기 계좌로 돈을 이체하는 등 약 990만 원을 뺏은 혐의를 받는다. 잠에서 깨어난 남성은 고 씨를 수상히 여겨 경찰에 신고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남성의 소변을 검사한 결과, 벤조디아제핀 계열로 추정되는 수면제 성분이 검출됐다. 벤조디아제핀은 불면증이나 불안장애 완화에 쓰이는 향정신성의약품 성분으로, 과다 복용 시 의식을 잃거나 사망에 이를 수 있다. 경찰은 23일 오전 1시경 고 씨를 긴급체포했다.
그런데 경찰 조사 결과 고 씨는 이미 비슷한 혐의로 신고된 상태였다. 19일 30대 남성이 서울 용산구의 한 주택에서 고 씨와 식사한 뒤 갑자기 잠들었다가 깨어 보니 약 2000만 원이 고 씨의 계좌로 이체된 상태였다. 이 남성은 20일 오전 고 씨를 경찰에 신고했으나 고 씨는 떠난 이후였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현장에서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보이는 약물이 다수 발견됐으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남성의 혈액 감정을 의뢰했다”고 밝혔다.
고 씨는 지난해 12월과 올해 2월 서울 양천구에서 서로 다른 30대, 20대 남성을 모텔 등에서 같은 방식으로 잠재워 각각 1500만 원, 400만 원을 뺏은 혐의로도 고소당한 상태다. 현재까지 파악된 피해자는 총 4명, 피해액은 4890만 원이다. 고 씨는 이 돈을 개인 물품 구매 등에 쓴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추가 피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수사를 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피해 남성들은 모두 결혼정보업체나 지인의 소개로 고 씨를 만났다. 의정부경찰서는 고 씨가 처음부터 금품을 노리고 남성들에게 접근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구체적인 범행 동기와 수법, 공범 유무 등을 조사 중이다. 반면 고 씨는 “남성들이 스스로 수면제를 먹었으며, 돈도 자발적으로 준 것”이란 취지로 주장하며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 ‘김소영 수법’ 판박이… SNS선 ‘레시피’ 기승
경찰은 고 씨의 혐의가 ‘강북 모텔 연쇄살인범’ 김소영(21)과 비슷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김소영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남성 6명에게 약물이 든 음료를 먹여 그중 2명을 살해하고 일부에게선 금품을 빼앗아 재판을 받고 있는데, 그가 쓴 약물도 벤조디아제핀 성분이었다. 또 김소영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명목으로 처방받은 약을 범행에 쓴 것처럼, 고 씨도 ‘병원에서 공황장애로 처방받은 약’이라는 취지로 주장했다고 한다.
온라인에서는 김소영의 범행이 알려진 뒤 그가 사용한 약물의 목록이 버젓이 공유되고 있다. 27일 X(옛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김소영 레시피’ 찾는다” 등 조합법을 묻는 글과 이에 답하는 게시물이 여러 건 검색됐다. 일부는 조회 수가 수십만 건에 달했다. 향정신성의약품은 의사의 처방이 필수이지만, 텔레그램 등 보안 메신저나 일부 해외 직구 사이트에는 세관 단속을 피해 이를 일반 영양제로 꾸며 배송해 준다는 업자도 여럿 있었다.
이에 따라 SNS와 직구 사이트에서 모방 범죄에 악용될 수 있는 내용을 규제하고, 수면제 등 향정신성의약품의 오남용을 억제할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영식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처방된 향정신성의약품 등이 불법으로 유통되는 통로를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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