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 경기장 앞에서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따른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
6·3 지방선거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촉발한 ‘올공 시위’가 수습 국면에 들어가는 모양입니다. 유럽 순방을 마친 이재명 대통령이 어제 금요일 기자회견을 통해 청년들의 분노를 이해한다는 취지로 밝히는 한편, 불법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있다는 표현을 동시에 했습니다.
김민석 국무총리 역시 내일 21일 일요일, 개표소가 있는 올림픽공원과 불과 500미터 떨어진 한국체육대학을 찾아 ‘선관위 개혁’을 주제로 시민들과 토론회를 갖는다는 속보도 전해졌습니다. 선거 직후 대학 총학생회 대표들을 만난 데 이어 열흘 정도 지났지만, 행정부의 수장이 뒤늦게라도 문제 해결에 나서는 모양새입니다.
● 화요일, 무산된 협상
사실 이번 주 화요일인 16일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개인 자격이 아닌 야당 당대표 자격으로 현장에 나타나 대한체육회 유승민 회장, 송파경찰서 간부들과 함께 시위대와 협상하고 중재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현장에서는 그날 사태가 일단락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16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을 찾아 개표소 봉쇄를 주장하는 시민들에게 진입 결정을 알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생방송이 가능한 방송 카메라 2대가 체육회 관계자들, 시위 대표들과 함께 각 체육회 사무실로 들어가 필요한 비품만 갖고 20분 이내에 나온다는 합의안이 처음에는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성조기를 두른 젊은 여성이 출입구 문을 붙잡고 막아서면서 협상안은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장 대표는 “지금 한 분이 입구를 막아 저희들이 지금 현장에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며 “최대한의 방법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단 한 분이라도 문을 막으면 저는 강제로 이 일을 진행할 의사가 없다. 경찰도 철수했다”는 말을 남기고 현장을 떠났습니다.
6.3지방 선거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한 사태에 대해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는 시민들이 서울 송파구 개표소인 올림픽공원 내 핸드볼경기장 출입을 봉쇄한 가운데 16일 오후 14시 50분 시민 한 명이 문을 가로 막아 체육회 인원들과 국민의힘 의원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다음 날인 수요일에는 스포츠 스타 출신인 임오경 의원 등 여당 의원 3명이 잠깐 현장에 나타나 시위대와 대화를 나눴지만 진전을 보지 못했습니다.
● 선거 당일의 기억
6·3 지방선거 당일 저는 잠실7동 제2투표소에 뉴스 속보를 보고 저녁 6시 5분에 도착했습니다. 개표 방송이 시작된 시각인데도 아직 선거를 마치지 못한 유권자들이 줄을 서 있었고, 상황을 어떻게 정리할지 모르는 주민센터 직원들과 유권자들이 언쟁을 벌이는 장면과 맞닥뜨렸습니다.
임오경, 천준호,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17일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반발한 시민들이 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서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을 찾아 발언을 하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선관위원장의 대국민 사과, 그리고 지난 11일 민간인들이 참여하는 진상규명위원회 회의가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건물 2층에서 열린 것도 현장에서 직접 보았습니다. 그날 회의장 밖에서는 성조기를 내걸고 ‘부정선거’를 외치는 나이 든 시위대와, 그들을 조롱하는 맞불 집회가 동시에 열리고 있었습니다. 성조기 집회를 극우라고 표현한다면 그들을 조롱하는 맞불 집회는 극좌라고 표현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선거를 둘러싼 해석과 대응은 이해하기 어려운 양상으로까지 번지고 있습니다.
● 올림픽공원 시위에 없는 세 가지
이번 주 백년사진에서는 올림픽공원 현장을 카메라로 지켜본 느낌 몇 가지를 여러분과 공유하려고 합니다.
지난주 토요일 이 코너를 통해 올림픽공원 집회 사진이 왜 약해 보이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번엔 일요일과 화요일 이틀 내내 현장을 직접 지켜보았습니다. 한국의 집회라면 으레 갖추는 세 가지가 없었습니다.
음악이 없습니다. 가끔 애국가를 부르지만 민중가요나 투쟁가요는 들리지 않습니다. 지도부가 없습니다. 협상의 주체가 불분명합니다. 세 번째는 인쇄물이 없습니다. 지도부가 없으니 사전에 준비된 인쇄물도 없습니다. 대신 현장에서 재능기부를 하는 사람들이 색연필로 스케치북에 태극기와 꽃을 그려서 참가자들에게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직접 스케치북에 구호를 써서 들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항의하는 개표소 봉쇄 시위. 16일 오전 8시 30분. 송파구 올림픽 핸드볼경기장 출입구 앞에서 시위대가 잠을 자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시위 참가자가 기자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기자가 참가자에게 말을 걸기도 합니다. 몇몇 인상적인 참가자들이 있었습니다.
20대 초반의 여대생은 경기장 옆 계단을 올라간 2층 광장에 테이블을 놓고 선크림과 생수, 과자 등을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아침 9시도 안 된 시간이라 일찍 나왔냐고 물으니 어젯밤 여기서 잤다고 했습니다. 모기장 형태의 텐트 안, 아스팔트 위에 자리를 깔고 잔 것이었습니다. 엄마는 자기가 여기 있는 걸 모를 거라며, 엄마가 평소 좌파라 자신과 많이 싸운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습니다. 주차장에서 만난 30대 초반의 청년은 외제차에서 카메라 장비와 프린터기를 꺼내고 있었습니다. 인생네컷 같은 사진을 보여주면서 그런 봉사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웃으면서 시위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시위 참가자들이 오해를 해서 신분을 확인시키느라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일요일 오전에 만난 30대 중반의 남성 직장인은 직업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전문직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참정권을 침해한 국가 기관에 대해 크게 분노하고 있었고, 문제가 만족할 만큼 해결되지 않는다면 광화문으로 가야죠라고 말했습니다.
빵과 음료수를 쇼핑백에 담아 현장 입구로 가져오는 사람들은 연령대가 다양했습니다. 의료진도 있었습니다. 의료 부스 앞에는 인상적인 안내문이 붙어 있었습니다. “약은 함부로 불출하지 않습니다.” 약품 관리 원칙이 있다는 뜻입니다. 수십 년간 우리 사회 광장에서 축적된 운영의 노하우가 여기에도 와 있었습니다. 낯설지 않았습니다.
화요일 오후, 장동혁 대표가 중재를 통해 열려고 했던 출입구 앞에서 농성하던 60대 여성 세 분은 “부정선거를 자꾸 부실선거 프레임으로 끌고 가려고 하는 것 아니냐, 당신 생각은 어떠냐”며 둘 중 하나로 답해달라고 묻기도 했습니다. 동네 친구냐고 묻자 여기 와서 알게 되어 같이 앉아 있는 거라고 했습니다.
종교적 신념으로 현장을 찾은 사람들도 가끔 보였습니다. 집회 현장 한쪽 구석에서 찬송가를 부르는 모습이 그랬습니다.
● 같은 공간, 다른 시위 방식
이제 현장의 구호는 거의 하나로 정리되는 듯합니다. “부정선거, 재선거” 그런 종류입니다. 비현실적인 요구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태극기부대로 시위가 비치는 데 부담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더운 날씨가 이어지는 것도 집회 규모를 축소시키는 요인일 겁니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항의하는 개표소 봉쇄 시위. 16일 오전 8시 송파구 올림픽 핸드볼경기장 앞에서 시민들이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선거 수개표” 의 구호를 외치는 모습을 경찰이 지켜보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이제 정부가 나섰습니다. 그런데 과거의 프레임으로 이 집회의 에너지를 해석하려 하면 오독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규칙도 없고 지도부도 없는데, 난동이라 부를 만한 장면도 별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참가자들이 여론의 눈치를 상당히 보고 있다는 것도 느껴졌습니다. 그래서인지 언론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도 있었지만, 이미 이른바 좌파 집회에서 많이 경험했던 수준이었습니다. 최소한 기자들에 대한 신분증 검사는 없었습니다.
중재나 문제 해결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아마 소환할 지도부가 없다는 사실일 겁니다. 조직화되지 않은 불만의 에너지를 어떤 방식으로 해소할 수 있을까요. 그건 정치의 영역일 것입니다. 올림픽공원 시위를 보시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현명한 의견을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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