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경기장에서 울려 퍼지는 관중의 함성은 단순한 배경 소음이 아니다. 스포츠 심리학과 운동과학 연구들에 따르면, 관중의 함성은 선수의 신체 능력, 심리 상태, 그리고 경기 결과에 매우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영향을 미친다.
스포츠 경기에서 ‘홈 어드밴티지(Home Advantage)’는 실재한다. 익숙한 경기장, 이동 거리로 인한 피로 감소 등 다양한 원인이 꼽히지만, 가장 강력한 변수는 단연 ‘관중의 함성’이다.
가득 찬 관중석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와 소음은 선수의 경기력을 올리기도, 때로는 완전히 무너뜨리기도 한다. 많은 스포츠 심리학자들은 실제 연구를 통해 관중의 함성이 선수에게 미치는 명암을 분석해왔다.
● 긍정적 영향: 지치지 않는 ‘에너자이저’ 효과
홈 팬들의 압도적인 응원과 함성은 선수의 뇌를 자극해 아드레날린과 도파민 분비를 촉진한다. 이는 신체적 피로감을 둔화시키고 순간적인 폭발력을 높이는 고유한 ‘사회적 촉진(Social Facilitation)’ 효과를 만들어낸다.
실제로 코로나19 시기 무관중 경기(Ghost Games)와 유관중 경기를 비교한 스포츠 경제학 및 심리학 연구들은 관중의 유무가 홈 팀의 ‘활동량’과 ‘스프린트 횟수’에 유의미한 차이를 만들었다고 보고한다.
코로나19 시기 무관중 경기는 일종의 자연실험이었다. 팬이 사라지자 일부 종목에서 홈 어드밴티지가 감소했다. 즉, 환호성은 선수가 한 발짝 더 뛰게 만드는 천연 촉진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 부정적 영향: 압박감과 주의력 결핍 (Choking)
반대로 원정 선수나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순간(축구의 페널티 킥, 농구의 자유투 등)에 쏟아지는 야유와 함성은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다.
초킹(Choking)은 스포츠 경기 등에서 선수가 과도한 긴장이나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평소 실력과 다르게 결정적인 순간에 실패하는 현상을 뜻한다.
2024년 국제 스포츠 운동 심리학 저널(IJSEP)에 실린 연구(맨체스터 메트로폴리탄 대학교 심리학과 제레미 올드필드)에 따르면, 축구 선수들은 부정적인 관중 소음(야유 및 맹비난)을 들을 때 페널티 킥의 정확도가 눈에 띄게 저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험에 참가한 24명의 축구 선수들은 골키퍼가 없는 상황에서 미리 녹음된 관중 소음을 들으면서 페널티킥을 찼다. 이후 참가자들은 자기 대화, 심상, 이완, 감정 조절을 측정하는 동일한 16개 항목의 심리적 기술 설문지를 작성했다. 실험 결과 페널티킥 정확도는 부정적인 관중 소음을 들었을 때 더 낮았다. 정확도가 낮은 선수일수록 자기 대화를 많이 했으며, 어떤 심리적 기술도 소음이 페널티킥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완화시키지 못했다.
스포츠 심리학에서는 이를 두 가지 이론으로 설명한다.
먼저 ‘주의 통제 이론’(Attentional Control Theory)이다. 관중의 거대한 소음이 선수의 뇌 속에서 인지 자원을 빼앗아가, 킥 동작 자체에 집중해야 할 정신적 에너지를 분산시킨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자기 초점 이론’(Self-focus Theory)이다. 과도한 압박감을 주는 소음 탓에, 평소 몸이 기억해 자동적으로 나와야 할 스킬(자동화된 동작)을 선수가 의식적으로 통제하려다 오히려 실수를 유발(Choking)하게 된다.
● 숨겨진 진실: 선수가 아닌 ‘심판’이 흔들린다
관중의 함성이 홈 팀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가장 강력한 메커니즘 중 하나는 선수가 아닌 ‘심판의 판정’에 작용한다는 점이다.
2010년 스포츠 운동 심리학 저널에 실린 연구(크리스티안 웅켈바흐·독일 쾰른 대학교)에 따르면, 축구 심판들에게 관중 소음이 있는 영상과 무소음 영상을 보여주고 반칙을 판정하게 했을 때, 관중 소음이 있을 때 홈 팀에게 파울이나 옐로카드를 훨씬 적게 주는 경향(홈 편향)이 뚜렷하게 관찰됐다. 인간인 심판 역시 수만 명의 함성과 야유라는 군중 압박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덜 비난받는 방향’의 결정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관중 함성은 경기력을 ‘좋게도, 나쁘게도’ 바꾼다. 홈팀에는 에너지와 자신감을 주지만, 원정팀이나 압박에 취약한 선수에게는 주의 분산과 불안을 만들 수 있다. 또한 심판 판정 경로를 통해 경기 결과에 간접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강한 선수는 함성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함성을 경기 루틴의 일부로 흡수하는 법을 훈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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