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5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그러나 대선 국면이 이대로 흘러간다면, 이재명의 대통령 당선은 곧 현실이 된다. 개헌도 그의 뜻대로 진행될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대선’은 이번이 마지막은 아닐까 두려워진다. 차라리 방정맞은 노파심이었으면 다행이겠다.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나온 이재명의 답변 때문이다. 찬찬히 뜯어본 내용은 곳곳이 지뢰밭이었다.
● ‘대통령 연임 제한’ 안 둘 참이었나
왜 연임제냐는 질문에 이재명은 다음과 같은 취지로 답했다. 중임제와 달리 연임제는 대통령이 이어서 두 번 한다는 거다. 그럼 세 번 네 번 계속 할 수 있다는 거냐, 이렇게 곡해를 하는데 걱정되면 1회에 한해 연임할 수 있다, 이렇게 쓰면 되지 않느냐.
당연히 걱정된다. 대통령 연임제 개헌을 하려면 ‘대통령 1회 연임’이라고 반드시 써야 한다.심지어 러시아헌법도 ‘동일 인물이 2기 넘게 연속 연방 대통령에 선출될 수 없다’고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장기독재는 연임 제한을 없애는 데서 시작됐다. 처음부터 연임 제한조차 안 둘 참이었다면 이재명의 ‘4년 연임제’는 매우 신박한 전략이다(러시아는 2020년 대통령 연임 제한을 그대로 두되 ‘0’부터 새롭게 적용하는, 사실상 푸틴 종신제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당연히 의심할 만한 것을 의심한 것인데, 왜 의심하느냐고 이재명처럼 웃으면서 공격하는 모습이 더 섬뜩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3연임 불가 규정 때문에 2008년 대통령 임기 때는 총리로 재직했고 2012년 이후 다시 대통령에 취임해 장기독재 중이다. AP 뉴시스● 국민의 뜻을 존중해 대통령 연임?
이재명 자신의 연임에 대한 답변은 머리털이 쭈뼛 설 정도다. “주권자인 국민이 선택하면 (연임이) 가능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주권자의 의사를 워낙 강조하니 후보의 생각이 궁금하다”는 질문에 이재명은 “헌법이 씌여져 있다. 씌여진 대로 읽으면 된다”고 답한 데서 끝나지 않았다.
현행 헌법 128조 2항은 ‘대통령의 임기 연장 또는 중임 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은 그 헌법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고 명시돼 있다. 이재명은 구구절절 한참을 설명하더니 마침내 이렇게 결론지은 것이다. “그럼 저는 어떤 입장이냐. 당연히 국민의 뜻을 존중해야죠.”
즉 국민이 연임하라고 하면, 하겠다는 소리 아닌가. 혹시나 이재명과 민주당이 맥락을 왜곡했다고 공격할까 봐 그의 발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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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적으로는 그런 논란이 있긴 한 거 같아요. 헌법을 개정하면 그런 그 조항조차도 국민이 바꾼다는 뜻이기 때문에 그게 그 개정 당시의 국민의 뜻이라면 그 개정된 헌법에 따르는 게 국민 주권주의에 더 맞다. 그럼 왜냐면 과거의 국민들이 현재 국민들의 의사를 제약하는 측면이 있는데, 국민의 의사는 현재 국민들의 의사여야 하는 거죠. 그러니까 학계에서는 그 적용이 없다 라고 하지만, 정치 더 이상(필자 주; 뭔 말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헌법에 씌여져 있는데 그걸 어떻게 쉽게 어기겠습니까. 또 책임의 문제가 있죠.”
● 헌법대로 읽으면 된다고 했더니 진짜 그런 줄…
이렇게 구구히 늘어놓은 다음 이재명은 “그럼 저는 어떤 입장이냐. 당연히 국민의 뜻을 존중해야죠”하고 말한 거다. 그러고 나서도 “그러나 저는, 이 개헌 당시에 대통령이 헌법 개정을 해서 그 개정된 헌법에 따라서 추가의 어떤 혜택을 받겠다는 걸 우리 국민들이 쉽게 용인하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그게 쉬운 일이겠어요. 좀 의심을 거두어 주시기를”이라고 굳이 덧붙이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재명은 오락가락하긴 해도, 국민이 용인만 해준다면 자신부터 연임하겠다는 의미로 말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 연임제 개헌이면 당연히 1회 연임이지 설마 두 번 세 번 연임하겠어? 싶은 게 보통사람 상식이다. 그러나 “존경한다고 했더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고 했듯, 이재명의 말 바꾸기가 어디 한두 번인가. 게다가 국민 뜻을 확인하는 과정도 없이 국민 뜻이 자기 뜻과 같다고 전제하는 정치인이 바로 이재명 같은 포퓰리즘 정치인이라는 연구가 숱하게 나와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2023년 8월 검찰 소환을 앞두고 페이스북에 올린 이미지. 지지자들을 모이도록 해 세를 과시하고 검찰을 압박하는 동시에 자신에 대한 체포동의안 부결을 당 의원들에게 요구하기 위함이라는 해석이 당시 나왔다. 이재명 후보 페이스북 캡처2023년 이재명의 체포동의안 가결 사태를 보라. 그는 “상대 정당, 또는 아주 폭력적 집단(검찰)과 암거래를 하는 집단을 가려내기 위해 일부러 부결시켜 달라”고 했다며 “우리 당원과 국민이 책임을 물을 거라고 봤다”고 자랑스럽게 밝혔다. 실제로 개딸들은 알아서 수박 색출에 나섰다. 3년 전과 1년 전에 벌어진 민주당의 이재명 맞춤형 당헌당규 개정도 마찬가지다. 보통사람은 자신만을 위한 당헌당규 개정 못 한다. 그런데 이재명은 당원과 국민의 이름으로 그 어려운 걸 태연히 해냈다.
● 이재명 뜻이 국민 뜻인 ‘국민주권정부’
이재명이 대통령 되면 새 정부 이름을 ‘국민주권정부’로 명명할 전망이다. 앞서 기자 질문처럼 주권자인 국민을 강조하는 이재명다운 작명이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국민’이란 개딸같이 자신에게 동조하는 사람만을 의미한다는 데 유의할 필요가 있다.
강금실 더불어민주당 중앙선대위 총괄선대위원장. 뉴스1대선 총괄선대위원장인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은 이재명의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 “국민주권을 모독하는 정치개입”이라고 했다. 이재명과 강금실은 같은 편인 만큼 대법원 판결에 분노할 순 있다. 하지만 강금실에게 국민주권이란 법 위에 있는 개념이라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국민주권 원리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법치주의, 헌정주의도 부정하는 것이 바로 포퓰리즘이다.
이재명 같은 포퓰리즘 지도자는 ‘엘리트 또는 적’을 설정하고 적대감을 조성한다. 이에 동조하는 이들이 ‘주권자 people’다. 엘리트는 주권자의 범주에서 배제되는 꼴이다. 그래서 포퓰리즘에선 people을 ‘국민’ 아닌 ‘인민’으로 번역해야 한다(윤종희 2022년 논문 ‘포퓰리즘, 국민주권의 변형을 지향하는 정치이념’). 대의제 민주주의보다 직접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이재명은 ‘국민주권정부’ 아닌 ‘인민주권정부’라고 하는 게 더 맞는 표현일 지 모른다.
● 의심 거둘 수 있도록 좀 더 분명히 입장 밝히길
이재명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개헌 시 열화 같은 인민(people)의 요청으로 ‘연임제는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 효력 있다’고 예외 규정을 두려 하지 않을까 솔직히 두렵다. 그렇지 않다면 이재명이 굳이 연임제 개헌을 들고 나올 이유가 어디 있을까. 1회 연임이 끝나갈 무렵, 엄중한 안보 또는 경제 위기를 들어 한번 더 연임 개헌을 들고 나오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 다음 연임 제한 폐지는 시간문제다. 그게 아니라면 ‘국민 뜻’ 운운 말고 보다 분명하게 입장을 밝혀야 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26일 오후 경기 수원시 팔달문 영동시장 입구를 찾아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제발 아니기를 바라지만, 개헌 뒤 치러지는 다음 대선은 지금과는 상당히 다를지 모른다. 이번처럼 자유롭고 공정하지 못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제목에 ‘마지막 대선’이라는 도발적 문구를 내건 것도 이 때문이다. TV토론 사회자로 김어준이 나설 수도 있다. 삼권분립과 법치주의는 이미 무너져 있고, 정부는 순치된 언론만 상대하고 있을지 모른다. 인민(people)이 주인되는 포퓰리즘 정부에선 독립적 언론 및 사법부 등과 충돌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해서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 김문수는 처절히 반성하기 바란다. 당신이 탄핵당한 전 대통령 윤석열에게 너무 오래 ‘도리’를 지킨 탓에 전세를 뒤집기도, 후보 단일화로 이재명을 무찌르기도 거의 불가능해져 버렸다. 썩어빠진 친윤 기득권이 싸그리 물러나고 이준석 한동훈 윤희숙 유승민 등 젊고 애국심 충만한 이들이 ‘개혁국힘’으로 똘똘 뭉쳐 국민을 돌려세우지 못하는 한.
이재명은 중국에도, 대만에도 “셰셰”하는 게 틀린 말이냐고 했다. 설령 이재명이 대통령 된대도 혼자 셰셰 해서 평화를 살 수만 있다면 참고 살아야 한다. 그러나 앞으론 개딸 아닌 다수 국민은 중국인 발마사지나 해주면서 “셰셰”해야 할 것 같아 분하고 원통해 못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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