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쇼팽을 ‘엄숙하게’ 연주하는 70세의 폴란드인 피아니스트 비톨트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연주회를 마치자 여자, 주최 측 임원인 베아트리스가 다소 공격적으로 묻는다.
“가장 중요한 감정은 무엇인가요? 행복이 중요하지 않다면 무엇이 중요하죠?” 사실 그녀는 말하고 싶었다. “당신의 예술을 변명해 보시라고요!”
이번엔 남자가 곤란하게 할 차례다. 몇 달 뒤 여자에게 남자의 이메일이 날아온다. ‘바르셀로나 근처 도시에서 마스터 클래스를 열고 있으니 방문해달라’는 것. “나(비톨트)는 당신 때문에(for you) 여기에 있습니다.” 남자는 고백한다. “디어 레이디(Dear Lady)… 당신은 내게 평화를 줘요.”
1943년 전쟁 중 폴란드에서 태어나 굶주렸을 남자와 배고픔을 모르고 자란 1967년생 여자 사이는 나이 차만큼이나 거리가 있다. 인사할 때 볼에 닿던 남자의 입술은 여자에게 ‘마른 뼈’ 같다. 여자는 말한다. “당신은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세계에 속하고, 나는 내가 일상적으로 진짜 세계라고 부르는 다른 세계에 속해요.” 그리고 말하고 싶다. “가엾은 바보 같으니라고! 당신은 너무 늦게 왔어. 잔치는 끝났어.”
2003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저자의 작품 중 드문 연애 소설이다. 폴란드 작곡가 프레데리크 쇼팽(1810∼1849)과 프랑스 소설가 조르주 상드(1804∼1876)의 사랑 이야기가 바탕에 깔려 있다. 문장이 건조한 것 같은데 위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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