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이것, 국가 안보와 밀접[곽재식의 안드로메다 서점]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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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유령입자로 불린 중성미자
핵 시설 탐지에 활용할 수 있어
낯선 입자 이론, 알기 쉽게 설명
◇사라진 중성미자를 찾아서/박인규 지음/304쪽·1만8000원·계단


20세기 초 활약한 오스트리아 과학자 볼프강 파울리는 방사성 물질을 연구하던 중 ‘베타 붕괴’라는 현상을 오류 없이 설명할 방법을 도저히 찾아낼 수 없어 좌절했다. 베타 붕괴는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다. 방사능에 관한 신문기사를 보다 보면 “어떤 방사능은 너무나 약해서 바나나 한 개에서 나오는 것보다도 약하다”라는 내용을 종종 볼 수 있다. 바나나에서도 관찰된다는 그 미약한 방사능이 바로 베타 붕괴에 의한 방사능이다.

이렇게 흔한 현상을 오류 없이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없다는 것은 매우 답답한 일이었다. 하는 수 없이 파울리는 베타 붕괴가 일어날 때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당시 기술로는 감지할 수도 없는 물질이 같이 배출되고, 그 물질이 오류를 일으킬 거라는 땜질식 이론을 제안했다.

이후 이 수수께끼 물질에 중성미자라는 이름이 붙었다. 보이지도 않고 감지할 수도 없다니, 이게 말이 되나 싶어 한동안 과학자들은 이 물질을 유령 입자(ghost particle)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기술이 발달하면서, 과학자들은 중성미자가 특별히 많이 쏟아지는 곳을 향해 아주 정밀하고 커다란 감지기를 설치해 측정하는 방법으로 결국 중성미자를 감지해 냈다. 1956년 미국 과학자들이 중성미자를 발견하고 유럽의 파울리에게 전보를 보냈을 때, 그 전보를 받은 파울리가 다른 주제로 발표를 하다 말고 즉석에서 중성미자 강연을 했다는 이야기는 과학계 전설로 남아 있다.

중성미자 연구에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시급히 투자할 필요가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방사성 물질을 한 번에 대량으로 쓰는 곳에서만 중성미자가 감지된다는 점을 이용하면 방사성 물질을 많이 사용하는 대표적인 장소인 원자로나 핵실험 장치 등 핵 시설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8년 한국과 미국 과학자들이 중성미자 감지 장치를 설치하면 북한의 핵 시설 가동을 탐지해 낼 수 있을 것이라며 연구를 해 보자고 공개 제안한 적도 있다.

박인규 교수의 ‘사라진 중성미자를 찾아서’는 낯선 입자 이론 분야에 첫발을 들이기 위한 책으로 특히 한국 독자들에게 권할 만한 책이다. 입자 중에서도 그래도 몇 번 들어 본 적은 있을 전자나 광자에 비하면 훨씬 이상한 물질인 중성미자의 기본을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성미자가 어떤 성질을 갖고 있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과학자들이 연구해 왔는지 일화 중심으로 핵심을 잘 정리하고 있어서 소재가 어려운 데 비해서는 읽기 편하다.

입자 이론 같은 기초 과학과 핵 시설 탐지 같은 국가 안보의 현실 문제는 의외로 거리가 가까울 때가 많다. 아무도 모를 일이지만, 국가정보원의 비밀 기지에 제임스 본드가 출입하는 것이 아니라 중성미자 감지 장치를 관리하기 위해 어느 화학자나 물리학자가 일하고 있다고 해도 무척 어울릴 풍경이라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중성미자#베타 붕괴#유령 입자#박인규 교수#입자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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