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만났던 정보라 작가는 차기작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언제나 현실에 발 딛고 있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때 얘기했던 작품이 나왔다. 약속을 지키듯 소설 속 사회는 유토피아가 아니다. 정확히는 유토피아를 만들려다가 실패한 사회다. 양육과 돌봄이란 시의적절한 문제를 건드려 생각해 볼 대목이 많다.
로봇과 인공자궁 연구가 조금 더 발달한 가까운 미래. 이 사회에는 ‘아이들의 집’이란 국립 보육시설이 있다. “모든 돌봄은 국가의 책임”이라는 철학 아래 만들어진 시설이다. 부모가 일하는 동안 아이들은 이곳에서 양육교사가 돌본다. 유치원이나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등하교도 도와주고 다쳤을 땐 병원에도 데려가 준다.
여기까지 읽으면 요즘 어린이집과 비슷하다 싶을 테지만 다른 점이 있다. 아이가 아이들의 집에 머무르고자 한다면 부모가 강제로 데려갈 수 없다는 ‘대원칙’이다. 그런데 굳이 아이를 집에 데려가서 죽게 만드는 사건이 발생한다. 싫다는 아이를 억지로 끌고 가서.
근미래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아이디어가 흥미롭다. 이 사회에선 인간 양육교사 외에도 로봇이 돌봄에 주요 역할을 한다. 자폐가 있는 아이 역시 로봇이 더 잘 돌본다. 아이가 울자 로봇이 몸통에 설치된 화면에서 어둡고 부드러운 노란 불빛을 반짝이며 아이에게 다가간다. 로봇에서 흘러나오는 불빛과 진동이 마치 아이를 달래는 듯하다.
인상적인 건 그럼에도 소설은 여전히 현실에 발 딛고 있다는 점이다. 등장인물 ‘표’는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해외 어느 나라로 입양돼 성장한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정부가 동성결혼을 금지하면서 양모들의 결혼이 인정받지 못하게 된다. 혼인 관계 중 입양된 표의 신분도 불안정해진다. 게다가 표와 결혼해 거주권을 얻은 배우자의 신분마저 흔들린다.
외부 요인으로 인해 가족이 서로에게 의지할 수 없는 존재가 돼 버리는 순간. 지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대적인 이민자 추방이 떠오른다. 장르라는 외피 안에 현실의 심장이 뛰고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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