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가벼운 더위’의 무서움… 폭염보다 사망자 더 많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7월 12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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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보다 발생 더 잦은 탓에 사망자의 총량은 훨씬 많아
기후 변화로 인한 피해 통계 분석… 극단적 현상 뒤 ‘숨겨진 피해’ 존재
경제적인 관점에서 기후 위기 조명
◇1도의 가격(기후변화는 어떻게 경제를 바꾸는가)/박지성 지음·강유리 옮김/408쪽·2만2000원·윌북

곳곳에서 발생하는 기후 위기의 증상들. 저자는 기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피해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7일 오후 세계 기상정보 사이트 ‘어스널스쿨’에 표시된 한반도 및 인근 지역의 불쾌지수 현황. 선명한 붉은색은 ‘체감온도 30도 이상’, 노란색은 ‘체감온도 40도 안팎’을 의미한다. 어스널스쿨 화면 캡처
곳곳에서 발생하는 기후 위기의 증상들. 저자는 기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피해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7일 오후 세계 기상정보 사이트 ‘어스널스쿨’에 표시된 한반도 및 인근 지역의 불쾌지수 현황. 선명한 붉은색은 ‘체감온도 30도 이상’, 노란색은 ‘체감온도 40도 안팎’을 의미한다. 어스널스쿨 화면 캡처
대중을 위해 쓰인 기후 변화 관련 책들은 분야와 주제를 가리지 않고 대부분 이런 형식이다. ①야! 기후 위기가 오고 있어. ②곳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 알아? ③정신 차려, 안 그러면 큰일 나. ④그래도 아직 늦지 않았어. 다 함께 나서자!

세월이 흐르면서 ①의 ‘오고 있다’가 ‘왔다’로 달라졌을 뿐 나머지 패턴은 비슷하다. 그런데 암울한 생각이지만, 이미 파국은 왔고 돌이킬 방법도 없는데 기후 관련 전문가나 연구자란 사람들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일말의 희망에 기대어 허망한 동아줄을 놓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개미들이 열심히 분리수거하고, 에어컨 끄고, 일회용품을 자제하면 뭐 하나. 분리수거라는 개념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지구 평균 기온을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1.5도 이내 상승으로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한 파리협약을 보란 듯이 탈퇴하는데.

2021년 11월, 과거 육지였던 곳에서 유엔에 보내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는 남태평양 투발루의 사이먼 코페 외교장관. 투발루는 해수면 상승으로 수몰 위기에 처한 섬나라다. 동아일보DB
2021년 11월, 과거 육지였던 곳에서 유엔에 보내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는 남태평양 투발루의 사이먼 코페 외교장관. 투발루는 해수면 상승으로 수몰 위기에 처한 섬나라다. 동아일보DB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공공정책대학원 및 와튼스쿨 교수인 저자가 기후 변화가 초래하는 피해의 ‘숨겨진 비용’을 지적한 점이 눈길을 끈다. 기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피해 규모를 제대로 파악해야 하는데 지구온난화, 생태계 파괴, 해수면 상승 등 눈에 보이는 것 너머에 보이지 않는 더 방대한 피해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기온이 35.0도를 넘는 날 사망률이 가장 가파르게 증가했지만, 26.6∼35.0도의 날씨에도 사망자가 큰 폭으로 늘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연구팀 추정에 따르면 높아진 기온으로 늘어난 노령 사망자의 3분의 2 이상이 이렇게 가벼운 더위 때문에 발생했으며, 이 가운데 뉴스에서 다룰 만한 폭염으로 분류된 더위는 없었다.’(5장 ‘폭염은 어떻게 삶을 무너뜨리는가’에서)

전문가가 아니라면, ‘가벼운 더위’로 인한 사망을 기후 변화와 연결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더욱이 ‘가벼운 더위’는 폭염보다 온도는 낮지만, 훨씬 더 많이 자주 발생해 사망자의 총량은 ‘폭염’ 때보다 훨씬 많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가 그 ‘가벼운’이란 용어 때문에 이를 기후 변화의 피해로 잘 느끼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또 이렇게 덜 극단적이지만, 더 자주 발생하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기상 현상의 한계 효과를 우리가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진심으로 그렇게 믿기 때문인지, 환경경제학자로서의 정체성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저자도 “아직 늦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유럽연합(EU) 내 이산화탄소 총배출량의 감소, 의미 있을 정도의 전기차 판매와 태양광, 풍력 발전소의 증가 등을 근거로 든다. 저자는 2021년 노르웨이에서 판매된 새 승용차 중 약 80%가 순수 전기차였다고 말한다. 아직 충분하지는 않지만, 그리고 갈 길이 멀지만, 세계는 본격적으로 방향을 전환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정말, 열심히만 한다면 우리의 작은 등으로 구멍 난 독을 메울 수 있을까. 자기와 자기 나라 이익을 위해서라면 “이렇게 추운데 지구온난화가 웬 말?” 이런 무지막지한 말도 서슴지 않는 사람이 옆에서 독을 ‘팡팡’ 깨는데, 우리의 작은 등으로 구멍을 메울 수 있을까. 지구온난화가 미국 플로리다 마러라고 리조트의 수장(水葬)을 일으킨다고나 해야 관심을 가질지…. 콩쥐야! 우리 이미 ‘O’된 거 아냐? 원제 ‘Slow Burn: The Hidden Costs of a Warming World’

#기후변화#파국#지구온난화#생태계파괴#해수면상승#폭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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