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시프 스탈린이 다스리던 시절 소련과 베니토 무솔리니가 통치하던 이탈리아는 국민의 문해력이 현저히 낮았다. 하지만 음악은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도 이해할 수 있다. 이를 간파한 두 독재자는 음악을 효과적인 통치 도구로 삼았다.
그들은 음악을 통해 정부의 정치 철학과 국가의 표상을 전달하고자 했다. ‘실험적’ 음악을 펼치는 음악가는 감시 대상이 됐다. 독일의 히틀러도 마찬가지다. ‘퇴폐 음악’이란 꼬리표를 붙이며 수많은 작품의 연주를 금지했다. 당대 음악은 시대가 요구했던 예술이었을까, 아니면 정치의 희생양이었을까.
우리가 오늘날 ‘클래식 음악’이라고 부르는 명작들은 대부분 20세기 초 이전의 작품들이다. 세계 유명 교향악단과 오페라단 음악감독 및 지휘자로 활동하는 저자가 1·2차 세계대전과 냉전 그리고 미국 할리우드로 이어진 현대 클래식 음악의 궤적을 추적했다.
전쟁과 역사의 소용돌이를 거치며 ‘클래식 정전(正典)’의 명맥이 끊겼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미 예일대 교수로도 일한 저자는 나치 독일 치하에서 탄압받았던 조지 거슈윈, 레너드 번스타인 등 작곡가들의 음악에 관한 최고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엄청난 희생을 낳은 두 번의 전쟁이 끝난 뒤 서방 세계는 미국을 중심으로 나치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가 이어졌다. 음악에선 특히 새로움과 표현의 자유를 표방한 ‘아방가르드 장르’가 정부의 지원 속에 ‘현대음악’의 대표 주자가 됐다. 이 과정에서 아방가르드 음악과 거리를 뒀던 유럽 출신의 미국 망명 작곡가들은 평가절하당하는 일도 벌어졌다.
할리우드 영화는 클래식 작곡가들에게 새 탈출구가 됐다. 저자는 극적인 오페라 연출로 국가민족주의를 구현하며 히틀러의 사랑을 받았던 리하르트 바그너를 영화 음악의 선조로 규정했다. 히틀러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이들 다수가 영화 음악에 뛰어들었다는 건 아이러니하다. 신선한 관점으로 근현대 클래식을 조망한 점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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