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어떻게 인생의 무기가 되는가/벤 앰브리지 지음·이지민 옮김/412쪽·2만4000원·RHK
미국 뉴욕대의 심리학자 톰 하틀리는 30년 전 학생이었을 당시 정신병을 앓은 적이 있다. 어느 날 다른 이들이 모두 자신을 죽이려 드는 것처럼 느꼈다고 한다. 신호등마저도 특별한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다.
비밀 임무를 받았다고 생각한 그는 미션을 찾으려고 애썼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그러자 자신이 마치 ‘쉬는 날의 제임스 본드’처럼 느껴졌다. ‘퀘스트(quest·탐색)’가 중단되고 느낀 감정은 안도가 아니라 좌절이었다. 그의 사례는 정신병을 겪을 때조차 인간은 ‘만족스러운 서사를 향한 욕망’을 느낀다는 걸 보여 준다.
영국 맨체스터대 심리학 교수인 저자는 “인간은 살면서 겪는 거의 모든 경험에 ‘마스터 플롯(Master plots·반복되는 이야기의 구조)’을 입힌다”고 강조한다. 이를 활용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퀘스트는 대표적인 마스터 플롯이다.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부터 영화 ‘반지의 제왕’까지 수많은 이야기가 이런 플롯을 갖고 있다. 괴물과 유혹, 진퇴양난, 초자연적 존재, 길동무 등이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핵심은 ‘탈속성(脫俗性)’이다. 주인공은 멀고 기이한 세상으로 떠난다. 마침내 시련을 이긴 주인공은 삶을 갱신하게 된다. 오디세우스는 가족과 재회해 새 삶을 살고, 절대 반지를 없앤 프로도는 죽지 않는 땅으로 향한다. 저자는 걸어서 세계를 일주하는 실제 인물의 이야기 등을 소개하면서 이 플롯이 지루한 삶을 바꾸고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책은 이런 방식으로 마스터 플롯 8가지를 소개한다. 각각의 플롯은 삶의 만족도를 높이거나(‘언탱글드·untangled’ 플롯), 자기 비난에서 벗어나고(‘이카로스’), 중독을 극복하고(‘괴물’), 경쟁자를 이기고(‘불화’), 응원과 사랑을 받고(‘약자’), 삶의 의미를 찾고(‘희생’), 밑바닥에서 탈출(‘구멍’)하도록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플롯을 아는 것과 삶에 적용하는 건 다른 문제다. 여행을 떠나느냐 마느냐는 각자에게 달린 것이니까.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