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린 팔다리, 뇌까지 재생… 난관 이겨낸 놀라운 생존史[브레인 아카데미 플러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7월 19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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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없이도 살 수 있게 구조 바꾸고
세균과 공생해 독성 물질까지 분해
이빨 평생 재생해 포식자 지위 누려
진화 속도 빨라진 사례도 속속 발견

《궁금하다 생각했지만 그냥 지나쳤던, 하지만 알아두면 분명 유익한 것들이 있습니다. 과거의 역사적 사건일 수도 있고 최신 트렌드일 수도 있죠. 동아일보는 과학, 인문, 예술, 역사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오∼ 이런 게 있었어?’라고 무릎을 칠 만한 이야기들을 매 주말 연재합니다. 이번은 동물편입니다.》


지구의 동물에는 진화의 시간 속에서 체득한 생존법이 축적돼 있다. 인간도 예외는 아니다. 여느 동물보다 흰자위가 발달해 타인의 기분이나 의도를 알아차리기 쉬워서 협동하려는 인간에게 도움이 됐다. 그 협력 덕분에 다른 동물이나 자연의 위협을 극복하고 지배적인 종이 될 수 있었다.

동물의 놀라운 생존력은 수직에 가까운 바위 절벽을 오르내리는 능력부터 척수나 뇌를 재생하는 능력까지 다양하다. 진화생물학, 발달유전학, 극한생물학 등의 발전으로 동물 생존법에 대한 이해는 깊어졌고 새로운 사실도 계속 발견되고 있다. 동물 생존법은 존속하고 싶은 인간에게 통찰과 영감을 제공한다.

● 물 없고 공기 희박해도 산다

연구용 이어태그를 달고 있는 캥거루쥐. 사진 출처 미국 지질조사국(USGS)
연구용 이어태그를 달고 있는 캥거루쥐. 사진 출처 미국 지질조사국(USGS)
북미 사막에 서식하는 캥거루쥐는 몸길이 10∼15cm의 설치류다. 뒷다리가 발달해 캥거루처럼 뛰어다닌다. 더 놀라운 특징은 물을 거의 마시지 않고도 생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캥거루쥐는 씨앗 등 건조한 먹이에서 얻는 수분만으로 생활한다. 신장에서 수분을 재흡수하는 ‘헨레 고리’가 다른 포유류보다 훨씬 길어 소변을 최대한 농축해 수분 손실을 최소화한다. 또 콧속 통로에는 수분 손실을 줄이는 냉각 시스템이 있다. 내쉬는 공기가 코를 통과해 냉각되면 공기 중 수증기가 응축되고, 캥거루쥐는 이를 재흡수한다.

가파른 바위산에 서 있는 알파인 아이벡스들. 사진 출처 스위스관광청
가파른 바위산에 서 있는 알파인 아이벡스들. 사진 출처 스위스관광청
유럽 알프스산맥의 야생 산양 알파인 아이벡스는 거의 수직에 가까운 바위벽도 자유롭게 오르내리는 능력이 있다. 단단하고 날카로운 각질로 돼 있는 발굽 바깥쪽이 바위 표면 미세한 틈이나 돌출부에 단단하게 걸칠 수 있도록 진화했다. 발굽 안쪽은 부드럽고 유연한 패드처럼 돼 있어 불규칙한 표면에 밀착해 잘 미끄러지지 않는다. 클라이밍 신발 바닥 테두리 부분이 딱딱하고 가운데 부분은 부드러운 것과 유사하다. 이 탁월한 등반 능력 덕분에 늑대나 여우 같은 천적을 피해 절벽에서도 안전하게 살 수 있다. 최근에는 고해상도 영상 분석과 센서 기술을 통해 아이벡스가 절벽을 탈 때의 미세한 발굽 움직임과 근육 사용 패턴, 균형 유지 메커니즘이 밝혀지고 있다. 이런 연구는 로봇공학, 인공 의족, 구조물 등반 기술 등에 영감을 주고 있다.

● 독성 환경도 이겨 낸다

폼페이 벌레. 위키피디아
폼페이 벌레. 위키피디아
1980년대 초 태평양 심해에서 처음 발견된 폼페이 벌레는 몸길이 약 10cm의 환형동물이다. 수온이 섭씨 80도를 넘나들고 독성 화학물질이 많은 깊이 2∼4km 심해 열수구에서 발견됐다. 통상 동물성, 식물성 단백질은 섭씨 40∼60도에서 변성이 시작되는데 폼페이 벌레 단백질은 특유의 구조적 안정성으로 80도에서도 아무 문제가 없다.

독성 환경은 공생 세균과 협력해 해결했다. 폼페이 벌레의 등에 빽빽하게 붙어 있는 다양한 세균들은 열수구에서 분출되는 황화수소나 중금속 같은 유해물질을 분해한다. 광합성이 불가능한 심해에서 이 세균들이 황화수소와 메탄 같은 무기물을 화학합성해 제조한 유기물이 폼페이 벌레의 에너지원이다. 대신 이 벌레는 자신의 점액과 각질 속 유기물을 세균에 먹잇감으로 제공한다. 지난해 한 연구에 따르면 폼페이 벌레가 보유한 고온 내성 단백질과 공생 메커니즘을 활용해 새로운 바이오 센서와 효소가 개발되고 있다.

성체 코알라와 새끼 코알라. 사진 출처 퍼블릭도메인픽쳐스닷넷
성체 코알라와 새끼 코알라. 사진 출처 퍼블릭도메인픽쳐스닷넷
코알라에게도 중요한 생존법이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유칼립투스 숲에 사는 코알라는 거의 유칼립투스 잎만 먹는다. 유칼립투스 잎을 뜯어 먹는 장면은 평화로워 보인다. 하지만 진화 과정에서 보면 이는 죽느냐 사느냐를 놓고 코알라가 자연과 투쟁해 쟁취한 승리의 장면이다. 유칼립투스 잎에 독성이 있어서다. 시네올과 유기 알데히드, 에스테르는 물론 청산배당체(자체 독성은 크지 않지만 청산가리 원료가 되는 청산을 방출해 독성을 띔) 등이 들어 있다. 11일간 유칼립투스 잎 7.7kg을 먹은 양이 심각한 위장 장애와 호흡 마비, 간 및 신장 급성 손상으로 죽은 연구 결과가 있다. 반면 코알라는 장에 있는 특수한 미생물 군집이 유칼립투스 잎 유해물질을 해독, 분해할 수 있다. 새끼 코알라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어미의 분변을 먹어 해독 시스템을 물려받는다.

● 반복 재생의 생존법

이빨을 드러낸 백상아리. 위키미디어커먼스(베르나르 듀퐁 작, CC BY-SA 2.0 라이선스)
이빨을 드러낸 백상아리. 위키미디어커먼스(베르나르 듀퐁 작, CC BY-SA 2.0 라이선스)
상어는 4억 년 전, 고생대 네 번째 시기인 데본기(‘어류의 시대’)부터 최상위 바다 포식자로 군림해 온 연골어류다. 상어의 존속 비결 중 하나가 평생에 걸친 이빨 재생 능력이다. 상어 턱에는 여러 줄 이빨이 끊임없이 자란다. 앞줄 이빨이 마모되거나 빠지면 뒷줄에서 새 이빨이 앞으로 이동해 빈자리를 채워 언제나 날카로운 이빨로 사냥할 수 있게 한다. 딱딱한 먹잇감을 먹거나 사냥 중 격렬하게 싸우는 등의 이유로 이빨이 손상되더라도 바로 복구되는 능력은 상어를 해양 먹이사슬 정점에 오르게 했다.

영국 셰필드대학 연구진은 2016년 학술지 ‘발생생물학(Developmental Biology)’에 인간에게도 상어 같은 이빨 재생 유전자 네트워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연구진은 인간의 치아판 세포를 재활성화하면 빠진 이빨을 다시 나게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야생의 아홀로틀. 위키미디어커먼스(로킬레치 작, CC BY-SA 3.0 라이선스)
야생의 아홀로틀. 위키미디어커먼스(로킬레치 작, CC BY-SA 3.0 라이선스)
멕시코 호수에 서식하는 도룡뇽 일종인 아홀로틀은 자연계에서 가장 극적인 재생 능력을 보여준다. 손과 발, 꼬리는 물론이고 척수와 뇌까지도 완벽에 가깝게 재생할 수 있다. 실험 환경에서 한쪽 팔다리를 수십 번 절단해도 원형 구조가 재생된다. 피부와 근육, 뼈, 신경, 혈관 모두 흉터 없이 복원된다. 실험을 위해 제거한 뇌 일부도 한두 달 만에 구조적인 복원이 끝났다. 신경망의 미세한 연결 및 고차원적 행동 회복까지는 2∼3개월 걸렸다. 정교한 신경회로망 중심인 뇌까지 재생되는 것이다. 성체가 돼도 이런 재생이 가능하다.

올 6월 다학제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된 연구는 레티노산이 재생 부위에서 안내자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레티노산 농도가 상대적으로 낮으면 잘린 부위 말단구조인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형성되고, 상대적으로 높으면 팔이나 어깨 같은 몸통에 가까운 구조가 재생된다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레티노산 신호와 함께 핵심 신호 단백질(Hand2, Shh 등)이 재생 조직에 ‘여기는 손목, 여기는 어깨’라고 세포 위치에 따른 정보를 전달한다.

태아 팔다리 형성과 성장, 신경 및 근육 발달 과정에서도 비슷한 과정(RA 관련 신호, Hand2, Shh 같은 핵심 분자들 활동)이 일어난다. 인간 피부나 간, 점막, 골조직 등이 손상됐을 때도 이 과정이 부분적으로 가동한다. 하지만 인간은 손실된 팔다리나 복잡한 신경조직 전체를 복구하지는 못한다. 최근에는 조직 재생 제어 및 흉터 없는 치료법 연구를 위해 아홀로틀과 인간의 재생 메커니즘 차이와 공통점이 상세히 분석되고 있다.

● ‘놀랍도록 빠른 진화’ 발견


녹색 아놀 도마뱀. 위키미디어커먼스(작자 미상, CC BY-SA 3.0 라이선스)
녹색 아놀 도마뱀. 위키미디어커먼스(작자 미상, CC BY-SA 3.0 라이선스)
2010년대 초 미국과 푸에르토리코 도시 생태 연구 결과 아놀도마뱀 신체 구조가 도시 환경에 맞춰 15∼30년 만에 유전적, 형태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음이 발견됐다. 도시의 매끄러운 벽과 뜨거운 아스팔트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다리가 길어지고 발가락 패드가 커진 것이다. 2016년에는 유전자 분석을 통해 이 같은 변화가 수십 년 만에 유전적으로 고착됐음이 확인됐다. 진화는 수백∼수천 년에 걸쳐 이뤄진다고 여겨졌는데, 수십 년 만에도 가능하다는 것이 검증된 것이다. 환경이 급격히 변화할 때 자연선택은 상상 이상 빠르게 새로운 형질을 고정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영국 런던 지하철 공간에 사는 ‘런던 지하철 모기(큐렉스 몰레스투스)’도 환경에 적응해 빠르게 진화하는 사례다. 이 모기들은 런던 지상의 일반 모기와 유전적, 생태적으로 상당히 다르다. 지하철 모기는 날씨와 무관하게 연중 번식하고 인간과 쥐 같은 포유류 피를 선호하며, 어둡고 건조한 곳에서도 번성한다. 기존 모기와 행태 등이 상당히 달라 한때 신종으로 분류됐다가 지금은 생태적 변형체로 분류된다. 런던에서 지하철 공사가 본격화된 1860∼1920년대에 일부 모기가 지하에 정착했고 이후 100∼150년 만에 진화한 것이다.

놀랄만한 생존 능력을 보이지 않더라도 지구에서 살아가는 동물은 모두 환경에 탁월하게 적응한 승리자다.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위대한 승리의 징표다.


QR코드를 스캔하면 17일 채널A에서 방송된 브레인 아카데미 ‘경제편’을 볼 수 있습니다. ‘동물편’은 24일 오후 10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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