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유산 지킴이들] 〈10·끝〉 궁중음식 장인 조희숙-김도섭
옛것에 가까운 식재료 찾아 발품
고문헌 조리법 재현-전수 매달려
“세계는 K푸드에 주목하는데 韓선 가치 인정 소홀해 안타까워”
지난해 여름 한의집이 궁중 보양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선보인 어채(魚菜), 착면(着麵) 등 한식 요리 상차림. 국가유산진흥원 제공
9월에도 더위가 늘어지며 여름이 가실 줄 모르고 있다. 조선 사대부들은 이럴 때면 ‘채소 잡채’를 즐겨 먹었다고 한다. 당면이나 고기 없이 채를 썬 오색빛 채소에 겨자를 끼얹어 차게 먹으면 그만한 별미가 따로 없다. 또 “끝물에 진짜 맛이 난다”고 하여 제철 막바지에 이른 은어로 국물 낸 국수로 기력을 보충하기도 했다.
‘한국의집’의 조희숙(왼쪽), 김도섭 셰프는 “점차 사라져 가는 전통 한식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재료를 받아들이되 한국적인 맛과 조리법에선 벗어나지 않고자 노력한다”고 말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3일 서울 중구 국가유산진흥원 ‘한국의집’에서 만난 조희숙(67), 김도섭 셰프(55)는 이런 반가(班家)음식과 궁중음식 등을 보전하는 데 힘써 온 장인들이다. 합치면 경력이 80년 가까이 되는 전통 한식의 대가다.
2020년 ‘아시아 최고의 여성 셰프’로 선정됐던 조 셰프는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밍글스’의 강민구 셰프 등이 제자인 스타 요리사들의 스승. 한국의집에서 3년째 고문을 맡고 있다. 김 셰프는 국가무형유산 ‘조선왕조 궁중음식’ 이수자로, 조선왕조 마지막 주방 상궁인 한희순(1889∼1972년)의 계보를 잇는 제3대 기능 보유자 한복려 선생을 사사했다. 현재 한국의집 한식연구팀장이다.
“전통은 ‘고집’하는 게 아니라 법고창신(法古創新·옛것을 본받아 새것을 창조한다)하며 ‘고수’하는 것”이라는 조 셰프의 말처럼, 두 사람은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요리를 선보여 왔다. 조선 고(古) 조리서인 ‘잡지(雜志)’, 1795년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조리법이 기록된 ‘원행을묘정리의궤’ 등에서 착안해 메뉴를 개발한다. 대표적인 요리가 올봄에 선보였던, 식재료를 부드럽게 다져 찌거나 굽는 전통 조리법 ‘느르미’를 활용해 게살만 발라 고춧가루 없이 찐 ‘게 느르미’였다.
식재료도 옛것에 가까운 걸 쓰고자 노력한다. 오늘날 농산물 품종은 대부분 개량돼 옛 재료는 발품을 팔아야 구할 수 있다. 지난달 김 셰프는 커다란 돌배나무가 있다는 경북 영주 부석사를 다녀오기도 했다.
“옛사람들이 먹던 돌배는 요즘 배보다 맛이 떨어져 수요도 공급도 없죠. 부석사 스님께서도 돌배는 땅에 떨어지게 둔다기에 우리가 써도 될지 여쭤봤어요. 배 떨어질 즈음 연락 달라고 하시더군요. ‘그때 그 맛’을 재현하려면 필요한 과정입니다.”
어렵사리 재료를 확보해도 요리의 완성까진 과정이 험난하다. 고문헌에 담긴 조리법 대부분이 체계적 순서나 통일된 계량법 없이 쓰였기 때문이다. 조 셰프는 “문헌에 적힌 대로 해서는 아예 요리가 안 되기도 한다”고 했다.
“당시 요리는 그 행위도 기록도 귀하게 여겨지지 못했어요. 그나마 전해지는 기록은 주로 양반이나 고관댁 자제가 쓴 것이죠. 그 때문에 직접 만들지 않고 먹어본 경험만으로 쓰인 경우가 많아요.”
두 장인은 수백 년 전 요리 재현에 그치지 않고 전수에도 열성이다. 이달부터 한국의집에서 열리는 한식 아카데미엔 강사로도 나선다. 일반인 대상 정규 클래스는 지난달 모집 시작 3일 만에 마감됐다. 올해는 셰프를 위한 마스터클래스도 개설했다. 조 셰프는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장기간 내다보는 전문가 양성 과정”이라며 “한식이 수익 내기 어렵다 보니 최근 기피 종목이 됐다”며 아쉬워했다.
사실 한식은 여러 반찬에 품도 많이 들어 식당 운영이 쉽지 않다. 들어가는 재료비나 인건비에 비해 ‘반찬은 공짜’ 같은 인식이 강해 가격을 높이기도 어렵다. 두 셰프는 “동네 백반집은 물론 고급 호텔에서도 한식당이 사라지는 추세”라며 “세계는 K푸드에 주목하는데 정작 한국에선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한식이 반짝 유행을 넘어 더 멀리, 오래 가려면 노를 저을 힘이 필요해요. 우리 스스로 음식의 가치를 인정하고 소중히 여기는 분위기가 그 동력이 되지 않을까요. 우리부터 한식을 아껴야 해외에서도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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