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눈병으로 고생한 고려 시인 이규보(1168∼1241)는 눈병에 대한 시를 여러 수 남겼다(‘又傷目病’ 등). 하지만 정작 눈병에 대해 인상적인 시를 남긴 건 이규보와 나이를 뛰어넘은 우정을 나누었던 오세재(吳世才·1133∼?)였다.
오세재는 이 무렵 여러 차례 과거에 낙방했다(‘破閑集’ 下). 벼슬도 하지 못한 채 나이 들어가는 것도 서러운데 눈병마저 시인을 괴롭혔다. 눈앞이 흐릿하고 눈부심이 심하다 하니, 오늘날 기준으론 백내장 증세 같다. 시력이 약해지니 등불 아래 글자 읽기도 겁나고, 눈 내린 뒤 유달리 밝은 햇빛은 눈이 시려 볼 엄두도 못 냈다. 시인은 과거에 미련이 남은 듯하지만 돌연 눈을 감고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겠다고 다짐했다.
영화 ‘어둠 속의 댄서’에서 시력을 상실해가는 셀마는 아들의 수술을 위해 자신에게 씌워진 누명을 감수한 채 눈을 감는다. 마그나 제공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어둠 속의 댄서’(2000년)에서도 유전병으로 차츰 시력을 잃어가는 셀마가 나온다. 공장 노동자인 셀마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시력을 잃어가는 아들을 위해 필사적으로 수술비를 모으고 있다. 하지만 믿었던 집주인에게 모은 돈 모두를 도난당한 셀마가 다툼 도중 원치 않은 살인까지 하게 되면서 영화는 파국을 맞는다.
시인의 삶도 비극의 연속이라 자식도 없이 아내는 떠나고 발 디딜 땅조차 없었다. 시인은 뛰어난 문장 능력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과거에 낙방했는데 심지어 거만하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이규보, ‘忌名說’). 그래서 눈 질끈 감겠다는 말은 자신을 힘들게 하는 혼탁한 세상에 대한 결별 선언처럼 들리기도 한다.
영화 속 셀마의 유일한 즐거움은 공장 직원들과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을 공연하기 위해 연습하는 일이었다. 셀마의 비극적 삶은 때론 환각 같은 뮤지컬 장면과 뒤섞인다. 궁핍한 시인의 토로가 희망 없는 현실에 대한 반어라면, 셀마의 환상 속 노래는 비극적 현실의 반면(反面)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이 눈 감는 이유는 보이지 않아서라기보다 불의한 세상을 보고 싶지 않아서라고 할 수 있다. 영화에서도 앞이 안 보이는 자신을 걱정하는 동료에게 셀마는 과거도 보았고 미래의 모습도 알고 있기에 더 볼 것이 없다고 노래한다. 셀마는 자식의 눈 수술을 위해 끝내 자신의 억울함에 대해서는 해명하지 않고 눈을 감는다.
시와 영화는 기존의 표현 방식을 변형시킨 사례이기도 하다. 시가 ‘병든 눈 비비며 하는 일에 힘쓴다’는 상투적 표현을 비틀었다면, 영화는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의 해피엔딩을 뒤집고 있다. 그런 면에서 시와 영화 모두 보기 싫은 세상의 부조리를 빗댄 눈병의 우화(寓話)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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