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범 감독의 ‘집 이야기’(2019년)에서 혼자 서울살이 하는 주인공 은서는 마음에 드는 집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몇 번째 집이냐는 부동산 중개사의 질문에 은서는 여섯 번째인가 일곱 번째 이사라고 답한다. 정주(定住)가 쉽지 않은 현대인들처럼 옛사람들도 안정된 집을 찾아 이사를 다니곤 했다. 도연명도 이곳저곳 옮겨 살았다고 하는데, ‘이사’를 주제로 한 다음 시에 그 사연이 담겨 있다.
시인이 굳이 교외의 남촌(남쪽 마을)으로 이주한 것은 이곳이 누구나 바라는 좋은 거주지여서가 아니었다. 비록 집은 볼품없지만 마음 맞고 대화가 통하는 이웃들과 즐겁게 어울리기 위해 일부러 이곳을 선택한 것이었다.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2018년)에서 서울살이에 지친 주인공 혜원이 이주한 이유도 이웃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임용고시에 떨어지고 잠시 쉬러 온 빈 고향집에서 혜원은 손수 땀 흘려 심고 수확한 자연의 재료로 만든 음식을 어린 시절 친구들과 나누며 즐거워한다. 한시의 역사에서 안빈낙도(安貧樂道)와 농사일을 하나의 주제로 개척한 시인도 위 시의 두 번째 수에서 “입고 먹는 것 당연히 챙겨야 하는 것이니, 힘써 농사지으면 나를 속일 일 없으리(衣食當須紀, 力耕不吾欺)”라고 읊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혜원은 뜻대로 안 되는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마음 나눌 벗들이 있는 고향집으로 완전히 이주한다.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혜원은 도시에서의 삶을 돌아보며 자신도 고향의 공기와 물로 자란 작물 같다고 느낀다. 영화에선 양파 심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아주 심기’를 말한다. 아주 심기는 작물이 이전에 자라던 곳에서 재배할 곳에 옮겨 심는 것을 말하는데, 더는 옮기지 않고 완전하게 심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혜원은 결국 도시에서의 부유(浮遊)를 끝내고 아주 심기를 하는 양파처럼 완전히 고향집으로 이주한다.
조선시대 이의현(李宜顯, 1669~1745)에게 도연명이 누린 남촌에서의 삶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자신은 세파에 시달리느라 그런 즐거움을 얻지 못했다고 한탄했다(‘雲陽漫錄’). 우리에겐 각자 꿈꾸는 집이 있다. 도연명의 이사가 보여주듯 집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이유는 좋은 입지와 고대광실이어서가 아니라 즐거운 소통이 가능한 정신의 안식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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