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지나친 책에 숨어 있었다, 고향의 달처럼 환한 지혜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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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 좋은 긴 연휴, ‘다시 보자 그 책’ 10선

2025년도 벌써 석 달도 채 남질 않았다. 연초 ‘책을 많이 읽겠다’던 굳은 다짐은 이미 무뎌졌을 때지만, 그렇다고 늦지 않았다. 모처럼 긴 한가위 연휴. 잠시 일에서 벗어나 굳어진 감각을 말랑말랑하게 되살려줄 책 한 권을 집어 들기에 더없이 좋은 때다. 동아일보 ‘책의 향기’ 팀이 연휴 동안 읽을 만한 책들을 골랐다. 매주 본보 지면을 통해 양서를 추려 소개하고 있지만, 지면 사정 등으로 미처 담지 못하고 지나쳤던 책들을 복기해 다시 모았다. 완성도에 비해 적은 분량을 할애해 못내 아쉬웠던 책, 뒤늦게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불러왔던 책들도 포함시켰다. 취향껏 읽기 좋도록 문학부터 인문·사회과학, 자기계발, 경제경영 등 다양한 분야에서 10권을 선정했다. 출간 시기는 최근 1년으로 한정했다. 한가위의 풍요로움이 책과 함께 커지는 연휴 보내시길.》



◇렛뎀 이론/멜 로빈스 지음·윤효원 옮김/비즈니스북스

“취업은 언제?” “결혼은?” 명절 잔소리가 벌써부터 두렵다면 이 책을 펼쳐보자. 누가 뭐라든 ‘렛뎀(Let Them·내버려두기)’ 기술로 인생의 주도권을 잡는 법을 알려준다. 라이프코치인 저자는 다른 사람의 평가나 기분처럼 ‘내가 할 수 없는 것’에 힘을 낭비하지 말고 자신에게 집중하라고 권한다. 렛뎀 이론엔 ‘렛미(Let Me·내가 하기)’란 두 번째 단계가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타인에게 신경 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필요한 행동을 주도적으로 선택한다는 뜻이다.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삶의 충만함을 깨닫고 싶은 이들에게 딱이다.

◇꽤 낙천적인 아이/원소윤 지음/민음사

‘서울대도 들어갔는데 클럽은 못 들어갔다는 여자’, ‘혼자 자취한다는 말이 제대로 어필됐는지 집에 도둑이 들었다는 여자’. 서울대 출신으로 무대에 올라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활발히 활동 중인 저자가 자전적 성장소설을 펴냈다. 책은 유쾌하면서도 아이러니한 화법으로 사회적 시선의 이중성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선명하지만 단순하지 않고 유쾌하지만 휘발되지 않는 문학적 유머를 선사한다. 무대 위에서 마이크 하나에 의지해 사람들을 웃겨야 하는 이가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냈을지 상상하며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내 시간 설계의 기술/캐시 홈스 지음·신솔잎 옮김/청림출판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앤더슨경영대학원 교수인 저자가 생산성에 기댄 시간 관리가 아니라, 행복한 순간에 몰입하며 시간을 투자하는 시간 설계법을 알려준다. 핵심은 스스로의 시간을 추적해 어떤 활동에서 행복을 느끼는지 파악해야 한다는 것. 불행한 일에 시간을 낭비한다면, 이를 어떻게 가치 있고 즐거운 일로 바꿀지 고민하라고 충고한다. 고정되지 않은 유동적 시간을 즐거운 활동으로 채워넣는 ‘모자이크 시간 설계법’ 등 시간 기근에 시달리는 이들이 활용할 수 있는 ‘꿀팁’이 가득하다. 재충전 기간 동안 시간 관리의 묘를 터득해 연휴 이후의 삶을 모색해보자.

◇그들이 보지 못할 밤은 아름다워/백사혜 지음/허블

2023년 ‘한국SF어워드’ 대상을 수상한 신예 작가의 연작소설이다. 먼 미래, 재벌들은 ‘영주’라는 계급으로 진화했고, 개별 국가의 개념이 사라진 지구는 각 영주의 소유지로 나뉜다. 막대한 영주의 투자금으로 우주에 파견된 개척단은 ‘외지구’에 자신들만의 문명을 세우고, 영주가 군림하는 지구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분노한 영주들은 외지구에 정착한 개척단을 향해 전쟁을 선포하는데…. 소설은 이 우주 전쟁의 발단부터 결말까지를 여섯 편의 중단편을 통해 치밀하게 그려낸다. 몰입감 높은 책에 푹 빠지고 싶은 SF소설 팬들에게 추천한다.

◇듀얼 브레인/이선 몰릭 지음·신동숙 옮김/상상스퀘어

미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스쿨의 부교수이자 인공지능(AI)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인 저자가 AI 시대 대비법을 안내한다. 많은 이들이 걱정하는 일자리 대체 문제에 대해 저자는 “AI로 인해 ‘업무’엔 큰 변화가 있겠지만, ‘직업’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책은 AI를 업무에 활용하는 법과 전문 지식, 장기적 통찰까지 아우른다. 내가 할 일과 AI가 할 일을 구분하는 분업 시스템인 ‘켄타우로스’와 AI와 한 몸이 된 듯 공동으로 업무를 진행하는 ‘사이보그’ 등 실용적인 방법을 제시해 눈길을 끈다.

◇너무 늦은 시간/클레어 키건 지음·허진 옮김/다산책방

최근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해외 작가로 꼽히는 클레어 키건의 최신작. 국내에 네 번째로 소개되는 작품이다. 짧은 세 편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집으로 프랑스 번역판에서는 ‘Misogyny(여성혐오)’라는 제목이, 미국판에선 ‘여자들과 남자들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었다. 다양한 제목이 암시하듯 책은 여자와 남자의 관계 속에 존재하는 미묘한 폭력과 우월주의의 기류를 추적한다. 일상화된 혐오가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인간이 이기심과 충동에 얼마나 취약한 존재인지를 예민하게 포착했다.

◇일생에 한번은 헌법을 읽어라/이효원 지음/현대지성

지난해부터 올 상반기까지 계엄 사태와 탄핵 등으로 여느 때보다 헌법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연휴 기간 우리가 지키고자 했던 헌법적 가치와 민주주의에 대해 찬찬히 고찰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이 책은 관록 있는 헌법학자가 대한민국 헌법 전문부터 부칙까지 총 130조항을 깊게 살펴본다. 법적 의미를 해석하고 이를 인생의 가치로 연결시키는 ‘내 삶의 헌법 사용설명서’라 할 수 있다. 난해한 전문 용어가 아니라 쉬운 단어로 풀어낸 게 강점. 우리 사회와 삶의 경계를 두르고 있는 헌법의 체계를 한 번쯤 들여다보고 싶었던 이들에게 추천한다.

◇분노 중독/조시 코언 지음·노승영 옮김/웅진지식하우스

최근 세계 곳곳에서 분노, 폭동, 선동, 혐오가 판을 치고 있다. 광기에 가까운 분노는 극단적 사건뿐만 아니라 일상에도 깊이 침투했다. 영문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저자는 이런 사회상에 의문을 제기하며 분노란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 어쩌다 우리가 분노에 중독됐는지 정신분석학적 측면에서 짚는다. 저자는 분노의 형태를 ‘의로운 분노’ ‘실패한 분노’ ‘냉소적 분노’로 분류하고 문학, 심리학, 철학을 넘나들며 살펴본다. 실제 상담 사례를 곁들여 분노를 수용하는 법도 제시한다. 연휴 중 가족과 부대끼다 혹시나 터져 나올지 모르는 화에 대비하기에도 좋다.

◇가해자는 모두 피해자라 말한다/릴리 출리아라키 지음·성원 옮김/은행나무

영국 런던정치대 교수인 저자가 피해자와 ‘피해자성(victim hood)’을 파헤쳤다. 성폭력 피해 여성, 인종차별에 시달리는 흑인 등 사회의 소수자뿐만 아니라 역차별을 억울해하는 남성, ‘소수자 우대 정책’을 한탄하는 백인, 무고를 호소하는 가해자까지. 많은 이들이 피해자를 자처하는 시대를 들여다봤다. 저자에 따르면 인권을 존중하는 국가일수록 역설적으로 피해자 지위가 공감과 연민, 정당성을 얻기 위한 무기로 남용될 수 있다. 역사 속에서 누가 피해자로 인정받았는지도 분석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피해자가 되는 건 권력자였다. 약자들에게 피해자의 지위를 되찾아줄 대안을 모색한다.

◇실패를 통과하는 일/박소령 지음/북스톤
2015년 콘텐츠 스타트업 ‘퍼블리(PUBLY)’를 창업해 10년간 이끌었던 저자가 기록한 사업 노트. 시리즈 B까지 네 차례 투자를 유치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지만 저자는 회사가 주목받던 순간조차 내부에선 수많은 시행착오와 혼란이 반복되고 있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이 책은 기업의 성취를 회고하는 연대기라기보단 실패를 통과한 과정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 사업 일지다. 실패를 성공의 디딤돌로 미화하지 않고 그 자체의 무게와 의미를 그대로 전달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어떻게 더 명확히 알게 됐는지를 담담히 풀어낸다. 도전과 실패의 극복을 놓고 고민하는 이들이라면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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