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中과의 ‘마러라고 합의’ 쉽지 않을 것”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5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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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행 前총재 시라카와 강연-대담
“美 무역적자로 피해의식-분노 쌓여… 트럼프, 세계 질서 뒤집으려 시도
日, 안보우산 탓 ‘플라자 합의’ 수용
中은 입장 달라… 실현 가능성 낮아”

29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5 동아국제금융포럼’에서 시라카와 마사아키 전 일본은행 총재(영상 왼쪽 화면),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연단 왼쪽), 박기영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연단 오른쪽)가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금융시장의 변화를 두고 대담을 나누고 있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29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5 동아국제금융포럼’에서 시라카와 마사아키 전 일본은행 총재(영상 왼쪽 화면),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연단 왼쪽), 박기영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연단 오른쪽)가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금융시장의 변화를 두고 대담을 나누고 있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미국이 지금처럼 피해의식에 사로잡혔던 1985년 ‘플라자 합의’ 당시 일본은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 중국은 그렇지 않다. 그땐 환율 무역 정책에만 집중했지만 지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 질서 자체를 뒤집어엎으려 하고 있어 ‘마러라고 합의’는 성공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은행 총재(2008∼2013년), 국제결제은행(BIS) 이사회 부의장을 역임하는 등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직접 목격해 온 시라카와 마사아키 전 총재는 29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5 동아국제금융포럼’에서 트럼프 시대 글로벌 관세 전쟁, 더 나아가 통화 전쟁의 앞날을 이렇게 내다봤다.

● “1985년 플라자 합의 경험 참고해야… 마러라고 합의 단호히 반대”

시라카와 전 총재는 ‘트럼프 경제 정책과 세계 금융시장의 변화’를 주제로 강연을 열고 “미국의 피해의식, 분노가 트럼프 대통령을 움직이는 동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과거 피해의식에 사로잡혔던 시기에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고 대응했으며 궁극적으로 미국이 전 세계에 어떤 결과를 미쳤는지 되짚어보면 도움이 된다”며 플라자 합의를 예로 들었다. 플라자 합의는 1985년 9월 22일 프랑스, 서독, 영국, 미국, 일본의 재무장관들이 모여 진행한 환율 조정 합의로 미국이 인위적으로 달러의 가치를 하락시키기 위해 특히 일본 엔화의 가치를 올리도록 한 것이 골자다. 그는 “일본도 1980년대 후반에 미국과 치열한 무역, 경제 갈등을 겪었다. 미국은 상대적 경제력 하락과 자동차, 반도체와 같은 주요 산업에서의 경쟁력 상실로 인해 좌절했다”며 “당시 미국은 일본을 상대로 큰 무역 적자를 내 일본에 공격적인 입장이었다”고 했다.

이어 시라카와 전 총재는 “마러라고 합의라는 (플라자 합의와) 유사한 아이디어가 진행되고 있다”며 “타국 화폐의 강제적인 절상을 통해 미국의 수출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두 미국의 상대적인 쇠퇴, 불어나고 있는 무역 적자에 따른 경제적인 위기의식에서 비롯됐다는 점에 공통분모가 있다”고도 덧붙였다.

그러나 그는 마러라고 합의에 대해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단호한 반대”라고 못 박았다. 또 “과거에는 일본이 미국의 안보 우산에 크게 의존했기 때문에 미국의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 중국은 다르다”며 실현 가능성도 낮게 봤다.

또 시라카와 전 총재는 “글로벌 관세 전쟁은 글로벌 공급망에 부담을 가중시켜 경제 효율성을 저해하고 그 결과 저성장 국면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며 “트럼프 행정부가 적대적인 조치를 취함으로써 진정으로 세계 경제 질서를 재설정하려 한다면, 미국 달러의 신뢰도는 더욱 약화될 것”이라고 했다. 달러의 패권이 흔들릴 가능성도 언급한 것이다.

시라카와 전 총재는 “미국이 글로벌 질서를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을 혼자 감당할 수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재편성’을 추구하는 것은 아마도 불가피할 것”이라며 “기존 글로벌 질서를 조정해야 하는 시점에 다가서고 있다. 아마도 오래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 “경제성장 위해서는 근본 이슈 해결해야”

일본의 장기 저성장 시기를 정리해 ‘일본의 30년 경험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라는 책을 펴내기도 한 시라카와 전 총재는 한국의 저성장 고착화 위기와 관련해 구조적 해법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던졌다.

시라카와 전 총재는 초대 금융위원장을 지낸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이 좌장을 맡고 박기영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와 진행한 대담에서 “현재 성장 전망을 양적 완화로 바꿀 수는 없다. 장기적인 차원에서는 효과적이지 않다”며 “한국을 진단하기로는, 일본과 유사한 구조적인 문제를 갖고 있기 때문에 경제 성장만을 두고 봤을 때는 일본과 한국 모두 근본적인 이슈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인구 감소는 경제적인 파급효과가 크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날 발제를 맡은 박 교수는 ‘글로벌 경제 동향과 한국의 대응’을 주제로 “기후변화, 인구변화, 인공지능(AI) 등 경제구조 변화에 재정 정책을 조금 더 과감하게 쓸 필요가 있다”며 “재정 건전성이 매우 중요하지만 재정 정책의 목적은 국민이 건강하게 더 잘살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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