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맥 넓으면 창의적이고 유능?
숫자 등 정형 정보 중요한 경우
연결될수록 역효과 생길 위험
통상적으로 인맥이 넓은 사람은 조직에서 인정받기 쉽다. 더 많은 기회를 얻고 더 큰 목소리를 내며 더 빠르게 승진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다양한 분야에서 믿을 수 있는 인맥을 쌓은 사람은 남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지식과 정보를 획득해 창의적이고 시의적절하며 효과적인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네트워크가 언제나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가까운 동료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다 보면 지식이나 정보, 심지어 사고방식까지 유사해질 수 있다. 이 경우 새로운 통찰을 얻는 데 한계가 있으며 이미 알고 있는 정보를 반복적으로 확인하면서 자신이 옳다고 믿게 되는 ‘확증편향’에 빠질 위험도 크다. 즉, 비슷한 정보만을 주고받는 네트워크는 외부의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고 기존 관념에 갇힌 채 변화에 둔감해지게 만든다.
특정 환경에서는 이런 네트워크의 부작용이 더 크게 나타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금융시장 내 헤지펀드는 투자 전략에 따라 정형 혹은 비정형 정보에 기반해 의사 결정을 내린다. 정형 정보는 정해진 기준에 따라 수치화된 정보를 의미하고, 비정형 정보는 해석과 주관이 개입되는 비표준화된 정보를 뜻한다. 가령 롱쇼트(long-short) 펀드는 펀드매니저의 주관적인 판단인 비정형 정보를 중시하는 반면 상대적 가치(relative value) 펀드는 계량적 모델을 통해 차익거래 기회를 찾는 정형 정보 중심의 펀드다.
그런데 같은 금융업계라 할지라도 객관적인 정형 정보를 중시하는 상대적 가치 펀드에서는 외톨이 매니저가 성과를 내기에 유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업계에서는 펀드매니저의 이직이 잦아 한 명의 잦은 이직이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연결고리가 된다. 과거 함께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매니저들이 시장 상황과 투자 판단에 대한 의견을 자주 교환하기 때문이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당시 이 네트워크 중심에서 떨어진 매니저들이 운용하던 상대적 가치 펀드는 큰 손실을 피한 반면 네트워크 중심에 있던 펀드들은 심각한 손실을 입고 청산됐다. 정형 정보가 중요한 환경에서 네트워크가 집단 사고를 유발하면서 부정적 영향을 준 것이다. 반대로 롱쇼트 펀드의 경우 매니저가 네트워크 중심에 가까울수록 리먼 사태에 더 민첩하게 대응했으며 네트워크에서 고립된 펀드들은 대응에 실패했다. 비정형 정보가 중심인 환경에서는 네트워크의 순기능이 더욱 크게 작용한 것이다.
많은 기업들이 경력직을 채용할 때 해당 인재의 네트워크 역량을 높이 사지만 조직이 다루는 정보의 성격에 따라 그 가치를 다르게 평가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 오히려 기존 네트워크에서 벗어난 외톨이형 인재가 더 적합할 수도 있다. 특히 최근에는 인공지능(AI)의 발달로 비정형 정보가 손쉽게 정형화되는 추세다.
실제로 AI 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 중국의 언어모델 ‘딥시크’는 기존 통념을 뒤집는 사례였다. 유학 경험조차 없는 중국 토종 프로그래머가 개발한 딥시크는 기존 네트워크와는 동떨어진 기업에서 탄생했다. 이는 프로그래밍처럼 정형 정보 중심의 분야에서 혁신이 반드시 잘 연결된 조직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시사점을 준다. 그런 의미에서 AI 시대에는 네트워크의 의미와 그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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