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조선업, 해양 재건 나선 美와 전략적 파트너십을[기고/이신형]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7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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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형 서울대 교수
이신형 서울대 교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뛰어난 비즈니스맨이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가진 상대에게 과감한 거래를 제안하는 것이 그의 특징이다. 그런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당선 축하 전화에서 한국에 제일 먼저 언급한 것이 조선산업 협력이었다.

미국이 한국에 조선산업 협력을 절실하게 요청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이 문제가 미국 해양력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최강 해양력을 자랑하는 미국이지만 정작 그 근간이 되는 선박 건조 능력은 지금 심각한 문제에 직면했다. 급속히 성장한 중국의 위협을 인식한 미국은 해양력 약화가 곧 고립과 생존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간 조선산업을 가볍게 여겨온 오판과 오만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지금 미국은 배를 건조하는 것도, 운용하는 것도 어려운 나라가 되어 버렸다.

이런 미국의 현실은 우리에게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미국이 함정과 상선 확보를 위해 한국 조선사에 대량 발주한다면 분명 좋은 기회다.

하지만 현실적 제약이 있다. 미국은 ‘번스-톨레프슨 수정법’에 명시됐듯 자국 해군 함정 건조를 다른 나라에 맡기지 않는다. 1965년과 1968년 두 차례에 걸쳐 제정된 이 법은 미군용 모든 함정과 주요 부품을 외국 조선소에서 건조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자국 제조업 부흥에 나선 트럼프 행정부는 상선 역시 자국에서 건조하길 원할 것이다.

그 뜻대로 일이 진행된다면 당연히 한국 시설에서 우리 기술로 선박을 건조해 수출하는 것보다 불리할 수밖에 없다. 조선산업의 기반이 무너진 곳에서 ‘맨 땅에 헤딩하듯’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4월 미국 정부회계감사원(GAO)은 미 해군 함정 건조 사업이 지속적 투자에도 불구하고 매번 예산 초과와 납기 지연을 반복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일부 함정은 계획보다 3년 이상 늦어지고 있다. 한국 조선사가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갖췄어도 미국에서 같은 성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에 ‘대박’을 바라기보다는 미국과 상호 신뢰에 기반한 전략적 파트너십 구축에 집중해야 한다. 미국은 조선산업을 주력 산업으로 육성할 의지가 없다. 필요할 때 안정적으로 선박을 공급받기만 원한다. 그 역할을 한국이 담당하면 된다.

그 대신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인프라 구축 투자는 미국이 전담하거나 최소한 절반을 부담해야 한다. 후방 산업 공급망 구축을 위해서는 한국 기자재 업체가 독점적 지위를 보장받아야 한다. 인력 공급은 이원화 전략이 필요하다. 고급 기술 인력은 한국에서 직접 공급하거나 한국이 교육 훈련을 제공해야 한다. 현장 노동 인력은 특별 쿼터를 통해 인건비를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한국 조선사가 미국에서 장기간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정부 간 협약도 필수다. 이 모든 조건을 양국 대통령이 패키지로 합의한다면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 다만 자동차, 반도체, 배터리, 액화천연가스(LNG) 등 다른 분야 협상에서 조선업 카드를 성급하게 사용해서는 안 된다.

#도널드 트럼프#조선업#해양 재건#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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