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회에서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핵심으로 하는 상법 개정 논의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9월 정기국회에서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까지 포함한 추가 개정도 예고된 상태이다. 반면 재계는 지나치게 빈번한 상법 개정이 혼란을 초래한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집중투표제는 1998년 상법 개정으로 도입된 제도로, 주식 1주당 선임할 이사의 수만큼 복수의 의결권을 행사해 소수주주도 특정 이사 후보에게 표를 몰아 줄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현행법상 정관으로 이를 배제할 수 있어 대부분의 상장사가 이를 적용하지 않고 있다.
집중투표제의 장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소수주주의 권익 보호 및 경영 투명성 제고 효과이다. 일반 주주가 자신이 추천하는 이사를 이사회에 진입시킬 수 있어 지배주주의 전횡을 제어할 수 있다. 둘째, 외국 사례를 볼 때 집중투표제 도입 시 기업의 경영 성과가 개선된 경우도 관찰된다. 예를 들어 주주행동 플랫폼 액트의 보고서에 따르면 집중투표제 도입국 다수에서 경영 효율성이 향상됐다는 분석이 제기된 바 있다. 물론 집중투표제 도입이 필요했던 만큼 문제가 있었던 기업들이니, 집중투표제 도입 후 경영 성과가 향상됐을 가능성이 크다. 셋째, 기관투자가 등 소수주주의 발언권이 강화되며 이사회 의사결정 과정이 다양화돼 기업의 거버넌스가 개선될 수 있다.
반면 단점도 존재한다. 이사회 내 파벌 형성 및 결속이 강화되면서 의사결정 지체, 경영 비효율 우려가 제기된다. 소액주주보다는 제2 또는 제3의 대주주와 같이 특정 주주 집단 중심의 후보가 이사로 선임되면서 경영정보가 외부로 유출되거나 사익에 이용될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임시주주총회 분할 개최 등을 통해 제도를 회피하려는 시도도 있으며, 관리 비용 증가 가능성도 지적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미국·일본 등에서는 아직도 전면 의무화보다는 선택적 적용(opt-in/out)을 택해 자율성을 유지하는 추세이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면서 장점을 살리기 위해서는 ‘핀셋 규제’ 방식이 적절하다고 본다. 즉, 모든 기업에 의무를 부과하기보다는 지배주주의 사익 추구가 의심되는 기업을 대상으로 집중투표제를 강제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지배주주가 막대한 의결권을 행사할 여지가 있는 회사에 대해, 정관에서 배제 규정을 두더라도 소수주주가 청구하면 반드시 집중투표를 실시하도록 법제화하는 것이다. 이는 지배주주 견제라는 도입 취지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경영권 혼란 우려를 일부 완화할 수 있다.
집중투표제는 소수주주 권익 보호와 경영 투명성 강화라는 긍정적 효과를 지니지만, 특정 주주 중심 의사결정과 경영 혼란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법적으로는 지배주주 권한 견제를 위한 ‘핀셋 규제’ 방식으로 대상을 한정해 의무화를 추진하고, 기업 현장에서는 상시적인 주주 소통 채널 강화 및 내부 거버넌스 체계 보완을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할 때, 상법 개정이 단순한 규제 강화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 거버넌스 선진화를 이루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