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여당이 상조업계의 선수금 운용에 대한 규제 작업에 착수했다. 규모가 10조 원에 달하는 시장이지만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선수금이 사실상 ‘사금고’처럼 자유롭게 이용되고 있어 이에 대한 제한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이에 따라 오너 등 지배주주가 선수금을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사용할 수 없도록 대여 한도를 자본금의 50%로 제한하고 임원이 소비자 손해에 ‘연대 책임’을 갖게 된다.
1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따르면 이날 상조업체의 선수금 사금고화를 방지하는 내용의 ‘할부거래에 관한 법률(할부거래법)’ 개정안이 더불어민주당 박상혁 의원 등이 참여해 발의됐다. 올해 공정거래위원회 업무 추진 계획에 포함된 내용으로, 의원입법 형식으로 추진된다. 상조업체의 재정 건전성이 부실하다는 판단에 정무위 소속 여야 의원들도 관련 법안을 잇따라 발의할 예정이다.
개정안은 상조업체가 고객들에게 받은 ‘선수금’을 오너 일가가 마음대로 쓰지 못하도록 하는데 초점을 뒀다. 상조업체가 지배주주에게 선수금 등을 빌려줄 수 있는 신용공여한도를 자본금의 50%로 제한한 것이다. 또 지배주주가 상조업체로부터 선수금 등을 빌릴 때에는 미리 재적임원 전원의 찬성을 거치고, 이 내용을 공정위에 보고해야 한다. 신고 금액 수준은 추후 시행령 작업을 거쳐 결정될 예정이다. 주식 투기, 지분 매입을 위한 대출에 선수금을 운용하는 것도 금지된다.
또 상조업체 대표이사 등 임원이 고의나 중대한 과실로 소비자에게 손해를 끼치면 연대책임으로 배상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지배주주가 상조업체에 영향력을 행사해 재무상 중대한 부실을 낳았다면 지배주주 역시 배상 책임을 갖는다.
여야 의원들이 상조업체 규제에 나서는 이유는 최근 상조업체 재정 건전성 악화로 소비자 피해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상조업은 ‘선불식 할부거래업’으로 분류된다. 선불식 할부거래업체는 소비자에게 재화나 용역을 제공하기 전 그 대금을 일정 기간 동안 나눠서 지급받는다. 하지만 소비자로부터 받은 선수금의 50%를 은행이나 공제조합 등에 예치하는 것 외에 자금운용과 관련된 별다른 규제를 받지 않고 있다.
이는 상조업체 지배주주의 선수금 ‘사금고화’를 야기해 왔다. 지난해 선불식 할부거래업체 10곳 중 9곳은 특수관계인과 거래내역이 있었다. 상조업계 1위 프리드라이프가 웅진그룹에 인수되기 전인 지난해 최대 주주였던 사모펀드 운용사가 만든 펀드에 500억 원을 출자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실제로 상조업체의 재정 건전성 부실이 심각하다는 조사도 나왔다. 한국소비자원이 박 의원에게 제출한 ‘선불식 할부거래업자 외부회계 감사보고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선불식 할부거래업체 74개 중 지급여력비율이 100% 미만인 곳은 42개(56.8%)로 집계됐다. 올해 3월 기준 상조 상품 가입자 수는 931만 명, 선수금 규모는 10조1878억 원에 달하는데, 사실상 상조업체 절반 이상이 폐업 시 소비자에게 받은 납입금 전액을 돌려줄 여력이 없는 셈이다. 소비자원에 접수된 피해구제 신청도 2022년 152건, 2023년 149건, 지난해 176건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올해 8월까지도 117건이 접수됐다.
국회와 정부가 공감대를 형성한 만큼 입법은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 관계자는 “제도 개선을 위해 국회와 지속적으로 소통 중”이라며 “여야와 정부가 같은 방향성을 갖고 있어 입법 추진이 원활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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