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일대의 모습. 2021.3.23 (용인=뉴스1)
SK하이닉스가 120조 원을 투자하는 경기 용인 반도체 공장이 6년 만에 첫 삽을 떴다. 국내 기업이 인허가 지연과 지자체 갈등으로 수년간 허송세월하는 동안 해외 경쟁사들은 몇 개월 단위로 신공장 착공을 이어가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전날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1기 팹(Fab·반도체 공장)을 착공했다고 25일 밝혔다.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일원 415만 ㎡(약 126만 평) 부지에 구축되는 클러스터에는 SK하이닉스 팹과 소재·부품·장비협력 단지, 인프라 단지가 조성된다. SK하이닉스는 이곳을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차세대 D램 생산기지로 만들 계획이다.
SK하이닉스가 2019년 2월 용인 클러스터 계획을 발표할 당시 착공 목표는 2022년이었다. 하지만 인근 지자체 반발에 인허가가 미뤄지고, 토지 보상 과정도 진통을 빚었다. 막판에는 전력 공급 문제까지 불거지며 착공이 3년 미뤄졌다.
SK하이닉스의 용인 팹은 올해 한국에서 신규 착공하는 유일한 반도체 공장이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에서 18곳의 반도체 공장 건설이 시작되는데 미국 4곳, 일본 4곳, 중국 3곳, 대만 2곳 등이다.
韓 반도체 클러스터 6년간 발묶인 사이… 美-日-中은 정부지원 아래 신공장 ‘속도’
SK 용인 클러스터, 뒤늦게 첫삽 물 공급 등 지자체 반발-인허가 지연… 그사이 AI 반도체로 시장 판도 급변 TSMC 등은 공장 지어 양산 돌입… “정부-지자체, 선제적 지원 필요”
SK하이닉스 용인 반도체 공장은 2019년 2월 발표 직후 환경영향평가부터 순탄치 않은 앞날을 예고했다. 클러스터에서 나오는 폐수 일부가 흘러든다며 안성시가 반기를 든 것이다. 반도체 공장 처리수로 인한 피해 사례가 없었다고 설명했지만 시민들의 반대 서명운동 등 진통이 1년 가까이 이어졌다. 결국 SK하이닉스는 안성시에 배후 산단을 조성하고 급식용 농산물 구매 협약을 체결하고 나서야 예정보다 1년가량 늦어진 2020년 11월 환경영향평가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후 공장 용수 공급을 위한 인허가 과정에서는 용수로가 지나가는 여주시가 반대하고 나섰다. SK하이닉스는 여주 산단 조성 및 지역사회 공헌 프로그램을 약속하고 2022년 11월 용수 인허가를 받아냈다.
산단 부지 내 토지 보상 절차도 지난했다. 2021년 9월부터 협의를 시작해 2023년 2월 주민 99%가 협상안을 수용할 때까지 꼬박 1년 5개월이 걸렸다. 막판에는 산단 내에 설치하기로 한 전력 발전소의 착공 허가를 쥔 산업통상자원부가 탄소 중립 영향을 문제 삼아 4개월을 끌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국내 공장은 사실상 모든 단계에서 기업이 이해관계자들과 일일이 협상하고, 보상안을 마련해야 진척이 되는 구조”라고 말했다.
용인 클러스터 착공이 차일피일 미뤄지는 동안 처음 발표 당시 예측했던 시장 환경은 급변했다. 인공지능(AI) 반도체로 시장 판도가 바뀌고, 주력 제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늘었다. 이에 SK하이닉스는 2022년 이천 낸드플래시 라인을 D램 라인으로 전환하고, 지난해 청주 공장 증설을 결정하는 등 ‘플랜B’를 총동원해야 했다.
그사이 해외 경쟁국들은 반도체 신공장 속도전에 나섰다. 일본에서는 대만 TSMC가 2022년 구마모토 1공장을 발표 6개월 만에 착공했고, 착공 3년 만인 지난해 12월 양산을 시작했다. 정부가 투자금의 40%를 보조금으로 지급하는 한편 구마모토현이 공업용수와 도로 정비 문제까지 직접 해결해 줬다. 미국도 2021년 착공한 TSMC 애리조나 1공장이 지난달 양산을 시작했다. 중국 CXMT도 정부의 막대한 지원 아래 공격적인 증설에 나서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웨이퍼 기준 생산 능력이 5배로 뛰었다.
내년 착공을 앞둔 삼성전자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SK하이닉스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정부와 지자체의 선제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11월 용인·평택 반도체 클러스터의 송전선로 비용 1조8000억 원을 분담해 기업의 부담을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또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력과 용수 공급도 적극 지원한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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