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워싱턴=AP 뉴시스
재집권 후 ‘정치 보복’을 예고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과 악연이 있는 법률회사를 겨냥해 연방정부와의 계약을 중단시키는 행정명령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과거 트럼프 대통령을 수사했던 검사가 변호사로 재직했거나, 친(親)민주당 행보를 보인 유명 법률회사들이 타깃이 되고 있다.
민간 법률회사를 상대로 사실상 대통령이 직접 행정명령을 내리는 것을 두고 ‘법조계 길들이기’란 비판이 제기된다. 워싱턴포스트(WP)는 “과거 어느 행정부도 이처럼 조직적이고 집요하게 법조계를 정면으로 공격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백악관 홈페이지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시카고의 유명 법률회사 ‘제너 앤드 블록’이 연방정부와 맺은 계약을 철회하고, 소속 변호사들의 연방정부 보안 인가를 박탈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 회사는 2016년 대선 당시 러시아가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캠프를 조직적으로 지원했다는 이른바 ‘러시아 스캔들’에 관한 수사에 참여했던 앤드루 와이스먼 전 검사가 한때 몸담았던 곳이다. 트럼프 2기 출범 후 ‘미성년자의 성전환 의료 서비스 자금 지원 중단’ 행정 조치에 반대하는 인권 단체의 소송을 대리해 ‘집행 보류’ 판결을 끌어내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에서 “제너 앤드 블록이 당파적인 ‘법률전쟁(lawfare)’을 묵인했다”고 주장했다. 이미 퇴사한 와이스먼 전 검사에겐 “존재하지도 않는 범죄를 추적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의 법률회사 ‘폴 와이스’, 워싱턴의 법률회사 ‘커빙턴 앤드 벌링’과 ‘퍼킨스 코이’에도 유사한 행정명령을 내렸다. 폴 와이스는 뉴욕 맨해튼 지방검찰청 소속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성추문 입막음’ 사건을 수사했던 마크 포머런츠 전 검사가 근무했던 곳이다. ‘커빙턴 앤드 벌링’은 트럼프 대통령의 2020년 대선 패배 뒤집기 시도, 2021년 1월 퇴임 당시 기밀문서의 불법 반출 혐의 등으로 그를 기소했던 잭 스미스 전 연방 특별검사에게 무료 법률 자문을 제공했다. ‘퍼킨스 코이’ 역시 러시아 스캔들에 관해 2016년 민주당 대선 캠프에 법률 자문을 제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 팸 본디 법무장관에게도 “연방정부와 정부기관을 대상으로 한 소송이 근거가 없고 악의적일 때 이 소송을 대리하는 변호사와 법률회사 또한 제재하라”고 지시했다.
이 같은 조치에 미 역사상 전례 없는 일이란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스콧 커밍스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로스쿨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싫어하는 이들에 대한 법적 대리가 불가능해질 것”으로 우려했다. WP에 따르면 조 바이든 행정부에 몸담았던 주요 인사들은 이미 변호인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뉴욕, 필라델피아, 샌프란시스코 등 미 주요 도시의 변호사협회 역시 24일 공동 성명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가 변호인의 독립성과 법치주의를 훼손했다”고 비판했다.
● 선거 제도도 민주당에 불리하게 개편 추진
그간 자신이 ‘부정 선거’ 탓에 2020년 대선에서 패했다고 주장해 온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여권, 출생증명서 등을 통해 미국 시민권자임을 입증한 사람만 연방 선거에 투표할 수 있도록 하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이민자 출신 시민권자들 중 시민권 증빙 절차를 밟지 않은 이가 적지 않다는 점을 노린 조치로 풀이된다. 전통적으로 이 같은 배경의 시민권자 중에는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이가 많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행정명령에 연방 선거의 투표 당일까지 접수되지 않은 모든 투표 용지를 무효로 처리한다는 내용도 포함시켰다. 이 역시 우편투표 비율이 높으며 역시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캘리포니아주 등을 겨냥한 조치로 풀이된다. 캘리포니아주는 투표일 종료 후 우편으로 배송된 투표지라 해도 발송 일자가 투표일 전이면 유효하다고 취급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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