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러트닉, 윗코프…코인에 뛰어든 美 정치 금수저 [트럼피디아]〈26〉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1일 08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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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비트코인 2024’에서 연설하는 트럼프 대통령. 테네시=AP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7월 28일 대선 선거 운동 도중 최대 암호화폐 컨퍼런스 ‘비트코인 2024’에서 “미국을 지구의 암호화폐 수도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1년 뒤 J D 밴스 부통령은 같은 행사에 참석해 “우리는 미국 시민들이 암호화폐와 디지털 자산, 특히 비트코인이 주류 경제의 일부로 자리잡고 영원히 남아 있을 것임을 알아 주기 바란다”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가상자산과 관련해 강한 규제 완화와 제도권 진입을 추진하는 배경을 살펴봤다.

● “‘비트코인 재무부’ 설립하겠다”
트럼프 일가는 다양한 암호화폐 사업을 벌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식 소셜미디어로 활용하는 ‘트루스소셜’의 모회사 ‘트럼프 미디어 & 테크놀로지 그룹’은 27일 25억 달러를 조달해 ‘비트코인 재무부’를 설립한다고 밝혔다. 비트코인 재무부는 25억 달러(약 3조4500억 원)를 활용해 비트코인을 매입할 계획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럼프 미디어 & 테크놀로지 그룹의 대주주다.

취임식을 며칠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은 밈 코인(유행을 반영해 만든 가상화폐) ‘$TRUMP’를 출시했다. 이는 트럼프 그룹에서 발행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달 중순까지 트럼프 코인으로 얻은 판매 수익을 3억5500만 달러(약 4899억 원)로 추산했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린 가상화폐 행사에 대담자로 나선 잭 윗코프(왼쪽)과 에릭 트럼프. 두바이=AP 뉴시스
트럼프 대통령의 세 아들인 트럼프 주니어, 에릭, 배런은 백악관 중동 특사인 스티브 윗코프의 아들 잭과 가상화폐 업체 ‘월드 리버티 파이낸셜’을 공동 설립했다. 월드 리버티 파이낸셜은 올 3월 스테이블코인 USD1을 새롭게 내놨다. 같은 달에는 에릭의 채굴 기업 ‘아메리칸 비트코인’도 출범했다. 아메리칸 비트코인은 나스닥 상장사 ‘그리폰 디지털 마이닝’과의 합병을 통해 뉴욕증시에 우회상장할 예정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다른 고위급 인사들도 가상자산에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의 아들 브랜던은 지난달 테더, 소프트뱅크 등으로부터 36억 달러(약 4조9680억 원) 투자를 유치해 비트코인을 매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밴스 부통령은 2023년 그는 25만 달러(약 3억 4500만 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다고 신고했다. 그는 28일 비트코인 2025 행사에서 자신도 비트코인을 보유한 미국인 5000만 명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소개하며 “이 숫자가 곧 1억 명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했다.

28일 ‘비트코인 2025’에서 연설하는 밴스 부통령. 라스베이거스=AP 뉴시스
같은 행사에서 돈 주니어와 에릭도 무대에 올랐다. 에릭은 트럼프 일가의비트코인 매입 계획을 밝히며 “누구든 당장 비트코인을 사야 한다”며 “비트코인을 매수하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파는 사람은 없어 가격이 더 급상승하게 될 것”이고 주장했다. 비트코인 채굴 사업체를 보유한 그는 채굴 기업에 대한정부의 지원 확대도 촉구했다.

● 반(反)제도권운동으로 합리화
트럼프 일가는 가상자산 사업을 부패한 금융 권력에 대한 정치 투쟁으로 포장하고 있다. 지난달 돈 주니어는 카타르경제포럼에서 “2020년 대선 패배 후 은행이 우리 가족의 정치적 견해를 문제 삼아 거래를 일방적으로 끊었다. 생존을 위해 가상자산으로 눈을 돌렸다”고 밝혔다. 최근 트럼프 일가는 캐피털원 은행을 상대로 이 은행이 2021년 300개 이상의 계좌를 폐쇄한 것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다.

에릭도 28일 비트코인 2025 행사에서 “우리 가족은 은행들의 대우에 매우 분노했다”며 “솔직히 일부 대형 은행들이 멸종되는 것을 보고 싶다”고 했다. 트럼프 주니어는 “중앙화된 전통 금융 시스템은 일종의 폰지 사기”라며 “가상자산을 통해 금융의 민주화를 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트코인 2025에 대담자로 나선 에릭(왼쪽 두번째)과 트럼프 주니어(중앙). 라스베이거스=AP 뉴시스
트럼프 미디어도 비트코인 매입 계획을 발표하며 “우리는 비트코인을 금융 자유의 정점이 될 도구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투자는 금융 기관의 괴롭힘과 차별로부터 회사를 방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가상자산에 칼을 빼들었던 조 바이든 전임 행정부에 대한 적개심도 활용하고 있다. 밴스 부통령은 비트코인 2025 기조연설에서 “바이든의 가상자산 탄압은 끝났다”며 “가상자산은 시민의 자유를 보호하고 나쁜 정책, 인플레이션, 차별로부터 위험 회피(헤지)를 돕는 수단”이라고 주장했다.

● 미국을 스테이블코인 중심지로
트럼프 일가는 스테이블코인까지 발행하며 가상자산 시장에서 몸집을 키우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 유로, 엔화 등 법정 화폐와 일대일로 연동(페깅)되는 가치를 갖도록 설계된다. 변동성이 낮고, 은행을 끼지 않고 수수료 없이 몇 분 만에 결제와 송금이 가능하다는 강점 덕에 기업과 개별 소비자들의 일상생활에 빠르게 스며들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스테이블코인으로 거래된 금액만 28조 달러(약 3경6400조 원)에 달한다. 이는 마스터카드와 비자카드의 연간 거래액을 합친 것보다 큰 규모다.

현재 스테이블코인 시장에서는 미 달러에 페깅되는 테더(USDT)와 서클(USDC)의 점유율이 90%를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코인을 발행하는 주체는 미 달러나 국채 실물을 준비금으로 확보해둬야 한다. 미국이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해 ‘달러 패권’을 유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배경이다.

미 상원에서는 최초의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법안 ‘지니어스법(GENIUS Act)’이 20일 통과됐다. 법안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자가 발행액 전부를 현금, 미국 국채, 은행 요구불예금 등 안전자산으로 보유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하원 통과는 난항을 겪을 것으로 전망되나 트럼프 행정부 출범 4개월 만에 가상자산 제도화가 급물살을 타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한 기업은 안전자산 중 국채를 대체로 선호한다. 국채 수익률(연 4~5%)을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 국채에 대한 수요가 줄어든 상황에서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큰손’으로 떠올랐다. 미 국무부에 따르면 올 3월 말 기준 테더와 서클은 미 국채를 1283억 달러(약 177조 원)어치 보유해 세계 18위 보유국인 한국(1258억 달러)의 보유량을 처음으로 추월했다.

국채 수요가 늘면 금리가 떨어져 향후 미국 정부가 신규 발행할 국채의 이자 부담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이는 국가부채 감축을 공약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기조와 맞물리며, 스테이블코인을 전략적으로 밀어주는 배경으로도 해석된다.

밴스 부통령은 28일 “스테이블코인이 미국 달러의 건전성을 위협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라며 “우리는 스테이블코인을 경제력을 배가시키는 힘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맞춤형 규제와 관련 법을 정비해 가상자산을 완전히 주류 경제로 편입시켜 규제 당국이 마음대로 가상자산 시장을 위협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섣부른 진흥책” 우려도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대비 없이 스테이블코인 제도화를 밀어붙이고 있다는 우려도 크다. 장기적으로는 스테이블코인이 시장 내 통화량을 급격히 늘려, 부채 증가나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민간 발행사가 스테이블코인을 찍어내는 행위는 중앙은행의 통화 공급이나 시중은행의 신용 창출과 유사한 경제적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또한 스테이블코인 제도화는 인터넷은행 출범 당시처럼 금리 경쟁을 촉발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전통 은행들이 고객 유출을 막기 위해 예금금리를 인상하거나 대출금리를 인하하면 시중에 풀린 돈의 양이 더욱 늘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예금 이탈에 취약한 소형 은행들이 유동성 위기를 겪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이 발행한 가상화폐에 투자한 사람들과 22, 23일 만나 이해상충 논란이 일고 있다. 이 행사가 열린 버지니아주 스털링에서 반트럼프 시위대가 트럼프 대통령의 얼굴이 그려진 가상화폐 팻말을 들고 비판하고 있다. 스털링=AP 뉴시스
한편 트럼프 일가가 지나치게 사익을 추구한다는 반감도 커지고 있다. 최근 아랍에미리트(UAE)의 아부다비 국부펀드 MGX가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낸스에 20억 달러(약 2조76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했는데, 이 대금을 치르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과 윗코프 특사의 자녀들이 설립한 월드 리버티 파이낸셜에서 발행한 스테이블코인 USD1을 사용한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에 불을 지피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번 거래로 월드리버티파이낸셜은 20억 달러의 예치금을 운용해 매년 수천 만 달러(수천 억 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된다. 이에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미 헌법의 보수조항과 연방 뇌물수수 금지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며 긴급 조사를 촉구했다.

트럼프 일가와 엮인 가상화폐 사업가들이 미 금융당국의 철퇴를 피하는 사례도 연이어 발생했다. 29일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바이낸스와 설립자 자오창펑에 대한 소송을 제기한 지 약 2년 만에 취하했다. 앞서 3월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바이낸스 측이 미국 시장 재진입과 자오창펑의 사면을 위해 의도적으로 트럼프 측근에 접근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UAE에서 열린 가상화폐 행사에 참석한 쑨위천, 잭 윗코프, 에릭 트럼프(왼쪽부터). 두바이=AP 뉴시스
22, 23일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버지니아주 골프 리조트에서 밈코인 상위 보유자 220명을 초대해 비공개 만찬을 연 가운데 이 밈 코인의 최대 보유자가 2023년 SEC에 사기 혐의 등으로 기소된 중국계 쑨위천(저스틴 선)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쑨 씨가 월드 리버티 파이낸셜에 7500만 달러(약 1035억 원)를 투자한 사실이 알려진 뒤 올 2월 SEC는 그와 관련한 소송을 일시 중단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하기도 했다.

계속해서 나오는 잡음을 두고 두고 폴리티코는 “트럼프 가문의 빠르게 성장하는 가상자산 제국이 가상자산 업계의 큰 골칫거리가 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한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일가의 윤리적 문제가 가상자산 반대자들에게 업계를 강타할 새로운 먹이를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일가를 둘러싼 소란으로 인해 가상화폐 제도화 관련 법안들의 최종 통과가 내년 중간선거 이후로 미뤄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가상자산 로비스트는 “암호화폐에 열광하는 대통령을 만나게 되어 기쁘지만, 그들의 사업은 보기에 좋지 않다”고 꼬집었다.

26화 요약: 트럼프 일가와 핵심 측근들은 암호화폐 사업에 적극 뛰어들었다. 비트코인 매입부터 밈코인, 채굴, 스테이블코인까지 가상자산 전반에 손을 뻗고 있다. 그러나 사익 추구가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커지며, 가상자산 제도화 논의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동아일보가 아카이빙한 미니 히어로콘텐츠 ‘트럼프 2.0 폴리시 맵’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주요 정책을 한 눈에 확인하세요.

https://original.donga.com/2025/trump_policym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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