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美서 추방 안하는 쪽으로 재판했더니, 돌연 해임 통보”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9월 19일 15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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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美이민법원 前판사 데이비드 김
“추방 여부는 가족 인생 달려 최대한 신중
90% 이상 추방한 판사는 해고 사례 없어
조지아 구금사태, ICE 협박 등 절차 문제
법적 대응 필요한 부분 있다면 도울 것”

출처 Vox 홈피 캡처
“9월 4일 오후에 재판을 하고 있었는데 모니터에 ‘해고 통보’라는 제목의 이메일 알람이 뜨더군요. 올 것이 왔구나 했습니다.”

이달 초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로부터 돌연 해고 통보를 받아 미국 법조계의 개탄과 지역 사회의 안타까움을 낳고 있는 데이비드 김(한국명 김광수) 전 뉴욕 연방이민법원 판사를 18일(현지 시간) 단독 인터뷰 했다. 1983년 고1을 마치고 미국으로 이민한 김 전 판사는 인정받는 이민법 전문 변호사로서 2022년 한국계 미국인 최초로 미국 연방이민법원 판사로 임명된 인물이다. 그런 그가 최근 ‘세 줄짜리 이메일 한 통’으로 해고된 사실이 미국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이민 정책과 사법부 장악이 또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김 판사의 망명 신청 인용(허가)률이 높았던 게 해고 사유가 됐을 거라는 것이다.

김 전 판사는 “나의 인용률이 높았던 이유는 의뢰인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변호사들을 못 참고 보완을 지시해 재판을 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라며 “추방 재판은 한 개인이 아닌 가족의 인생을 결정하는 재판이기에 신중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있었던 조지아주 구금 사태는 언뜻 봐도 분명히 문제”라며 “이민법 전문가로서 한국의 법적 대응에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돕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 일답.

ㅡ미국 언론을 통해 해고 사실이 알려졌다. 무슨 일이 있었나.
“지난 4일 오후에 재판을 하고 있었는데 3시 15분쯤 모니터에 ‘해고 통보’라는 제목의 이메일 알람이 떴다. ‘올 것이 왔구나’ 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시작된 이래 이미 많은 판사들이 잘렸기 때문이다. 일부는 조기 퇴직 형태로, 또 일부는 해고로 그렇게 한 두 달 간격으로 판사들 해고가 계속 이어져 온 상황이었다.” (※미 언론에 따르면 보스톤, 시카고, 뉴욕 등 미 전역에서 해고되거나 퇴직 처리된 이민 판사의 수는 이미 100명을 넘었다.)

ㅡ이메일 내용은 뭐였나.
“딱 세 줄이다. 모두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은 내용을 받는다. ‘미국 헌법 제2조에 의거하여 대통령의 권한으로 오늘부로 당신은 이민법원 판사가 아니다. 그러니 오늘 영업시간 내에 모든 연방정부 기물을 반납하고 떠나라’는 내용이다.”

ㅡ그래서 어떻게 했나.
“일단 해고가 됐으니 재판을 하면 안됐다. 그래서 재판이 거의 막바지였는데 중단을 하고 ‘다른 판사와 새로운 재판 일정을 받게 될거다. 건투를 빈다’고 하고 나왔다. 아마 검사와 변호사, 재판받던 사람들이 가장 황당했을 거다. 그 뒤 컴퓨터와 출입증 등을 반납하고 떠났다.”

ㅡ판사를 이메일 한통으로 자를 수 있나.
“전례 없는 일이다. 트럼프 1기 때도 이민 법원에 대한 탄압이 있었다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미국 이민 역사상 사상 초유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해고된 판사님들은 대부분 행정부에 대한 소송을 접수했고 나도 이번 주에 소송을 접수했다.”

ㅡ해고 사유는.
“나도 모른다. 다만, 미국 언론들은 나의 망명 인용률이 높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추정한다. 가능한 추측이다. 실제 앞서서도 망명 인용률이 높은 판사들이 해고됐기 때문이다.”

ㅡ실제로 인용률이 무척 높긴 했다. 망명 인용이 96.9%, 기각률은 3.2%였다. 뉴욕 이민법원 판사들의 평균 기각률 34.8%보다 현저히 낮다. 이런 차이는 무엇 때문이었나. (※시라큐스대 데이터 분석 비영리 연구기관 트랙(TRAC) 분석 기준)
“원래 판사들마다 인용률 차이가 엄청나다. 나는 90% 이상 인용했지만 판사들 중에는 90%이상 기각시키는 경우도 많다. 내가 인용률이 높았던 이유는 무엇보다 내가 심사했던 케이스가 모두 100% 변호사가 있는 케이스였기 때문이다. 추방 재판에서 변호사가 있느냐 없느냐는 천지 차이다. 또 어떤 변호사가 의뢰인을 대변하느냐도 엄청난 차이를 만드는데 나는 변호사가 의뢰인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걸 못 참는 스타일이었다. 정말 불행하게도 같은 변호사 입장에서 봐도 말이 안된다 싶을 정도로 대충 하는 변호사들이 많은데, 이런 걸 다시 보완하게 지시했다.”

ㅡ예를 들자면.
“예컨대 망명신청서조차 제대로 작성 안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재판을 하기 위해 필요한 서류가 있는데 자료에 없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의뢰인에게 물어보면 ‘난 그 서류를 변호사에게 줬다’고 한다. 하지만 변호사는 판사인 내게 그 서류를 접수하지 않았다. 그런 경우 보통은 기각하거나 하겠지만 나는 짧게 시간을 주고 해당 서류를 접수하라고 지시하는 편이었다. 가끔은 법정 기록에 ‘당신은 의뢰인을 버리고 있다’고 남길 정도로 훈계하기도 했다. 당연히 검사는 싫어하지만 누군가의 인생이 달린 문제 아닌가. 특히 추방 재판은 한 개인이 아니라 가족의 인생이 결정지어지는 것인데. 그렇게 하다보면 인용 케이스가 많아질 수 밖에 없다.” (※최근 이민법원 재판장 밖 복도에는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들이 대기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기각 처분이 내려질 경우 곧바로 체포돼 구금되고 신속 추방되는 경우가 많다.)

2022년 뉴욕 연방이민법원 판사 취임 선서식 당시 아들과 함께한 데이비드 김 전 판사. 데이비드 김 판사 제공.
2022년 뉴욕 연방이민법원 판사 취임 선서식 당시 아들과 함께한 데이비드 김 전 판사. 데이비드 김 판사 제공.

ㅡ인용률이 높으면 불이익이 있으리라 생각 안했나.
“이민법원 본부에서 ‘앞으로 판사 평가시 재판 결과가 한쪽으로 치우치면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는 지침이 온 적이 있다. 당시 판사들 대부분이 망명 승인을 많이 해주지 말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실제 트럼프 2기 이후 판사들의 망명 기각률, 추방률을 보면 그래프가 갑자기 상향곡선을 그리는 걸 볼 수 있다. 또 해고된 판사들도 대부분 망명 승인률이 높은 판사들이었다. 반대로 기각률이 90% 이상인 판사 중에는 해고된 사람을 본 일이 없다.”

ㅡ이민법 전문가로서 최근 조지아주 한국 근로자 구금 사태는 어떻게 봤나.
“법적으론 미국 시민권자지만 한국은 조국이고 늘 강한 애착이 있다. 그래서 비슷한 일이 있으면 눈여겨보는 편이다. 조지아주 사건은 자료를 제대로 봐야 알겠지만 언론을 통해 보도된 내용만 언뜻 봐도 ICE에서 협박 구금을 하는 등 절차적 문제가 분명히 있다. 이 분들은 미국에 눌러 앉으려 온 사람들이 아니고 공장을 지으러 온 전문가들 아닌가. 트럼프 2기는 절차를 안 따르는 경우가 많아서 법조계에서도 굉장히 걱정을 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미국은 절차법이 발달된 나라라 실제 법적 다툼에 들어가면 이를 굉장히 따진다.”

ㅡ한국으로 돌아간 구금자 가운데 법적으로라도 억울함을 풀고 싶다는 목소리가 많다.
“피해자가 300명이 넘는 만큼 법적 피해 구제 방법을 찾으려면 집단소송으로 가는게 가장 효율적일 것이다. 이민법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법적으로 ICE가 반드시 따라야 하는 절차가 있는데 이를 따르지 않았다면 불법이다. 미국법 중에 ‘외국인 불법행위 청구법(Alien Tort Claims Act·ATCA)’이라는 법이 있다. 미국에 의해 외국인들이 정신적 육체적 피해를 입었을 때 보상을 신청할 수 있는 법이다. 그런데 이걸 할 수 있는 변호사가 많지 않고 굉장히 드물다. 나 역시 이 분야에서 최고 대가로 꼽히는 아이라 커즈반 변호사 밑에서 3년 간 일하며 이민법 전문가의 길을 갈 수 있었다.” (※커즈반 변호사는 미국 이민법의 최고 권위자로, 그의 책은 이민법 변호사들 사이에서 ‘바이블’로 불린다.)

ㅡ한국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보면 이번 일은 한국 정부에게 기회일 수 있다. 그간 한국이 전문직 취업 비자 확대를 위해 십년 이상 노력해 왔는데 관련 법이 상하원을 모두 통과해야 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라면 입법을 푸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한국 정부의 역량이 발휘돼야 하는 부분이다. 또 이와 관련해 미국 이민법에 대해 한국 정부에 조언을 해줄 고문 변호사가 필요하리라고 본다. 나 역시 도울 일이 있다면 돕겠다.”

ㅡ본인도 이민자이다.
“아직도 이민 오던 날이 생각난다. 1983년 2월 14일 고1 연말고사를 보는 날이었다. 16살의 이민이란 쉽지 않았다. 친구들도 다 여기 있는데 왜 가야 하느냐고 따져 물었던 기억이 난다. 평생 감리교 목사님이셨던 아버지는 서슬퍼런 박정희 정권에서 간접적으로 유신헌법 반대 성명을 지지했다가 긴급조치 1호로 감옥에 가셨다. 보통 군사 법정에서 15년형씩 징역 재판을 받던 땐데 기적적으로 엠네스티 국제기구를 통해 사연이 알려지며 외신에 보도가 되고 전 세계에서 5000통이 넘는 편지가 오고 하면서 1년 1개월 1일만에 석방되셨다. 하지만 늘 까만 양복을 입은 아저씨 두 명이 날 따라다녔고, 전두환 정권에 들어서서는 좌파로 낙인이 찍여 목회 활동을 못할 정도로 탄압이 더 심해졌다. 결국 이렇게는 아들 둘이 사회에 나가도 직장도 못잡겠다는 생각을 하신 부모님이 신학대학원 유학을 오며 이민을 오게 됐다.”

ㅡ고등학생 때 이민 와 판사가 되기까지 많이 힘들었겠다.
“한국에서도 공부는 열심히 했지만 미국에 와서는 영어가 부족하니 고등학교 때 정말 평생 가장 열심히 공부했다. 한국을 떠날 때 친구들이 그랬다. ‘미국 가서 꼭 성공해라, 우리를 절대 잊지 마라’. 그말을 생각하면서 매일 악착같이 공부했다. 하루 종일 머릿속으로 영어를 생각했고, 샤워할 때도 단어를 외웠다. 티비 뉴스를 보면서도 입모양과 발음을 늘 유심히 보며 따라했다. 그래서 이민자의 마음을 누구보다 이해한다.”

ㅡ앞으로의 계획은.
“이번 일이 있고 나서 많이 놀란 게 하루 종일 이메일, 전화, 문자가 끊이지 않을만큼 수백 수천명이 지지를 보내주신다. 이미 저명한 이민 로펌들에서도 영입 제안이 와 몇 군데 인터뷰를 했다. 이력서를 낼 필요도 없다고 하더라. 이번 주 중 결정하려 한다. 신앙인으로서 하나님은 신비로운 방식으로 일하시며 이번 일도 어떤 이유로 허락하셨다고 생각한다. 이민법은 힘든 분야고 모두가 진지하게 임하는 것 역시 아니다. 하지만 진지하게 임하는 사람들은 깊이 존중받는 분야다. 인생이란 결국 한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의 가치와 덕목을 쏟아내며 최선을 다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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