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동 삼성서울병원 순환기내과 교수-급성 심근경색 김정언 씨
협심증 모른 채 16개월 그냥 보내… 독감으로 맥박-심근효소 수치 급증
급성 심근경색 진단 후 혈관 확장술… 1차 시술받고 심장 재활 훈련 돌입
36회 완료, 2차 스텐트 회복 빨라… 스스로 재활 지속하며 일상 회복
김정언 씨(오른쪽)는 급성 심근경색 1차 시술 이후 심장 재활훈련을 꾸준히 받아 재발 위험을 낮추고 일찍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김 씨가 성지동 삼성서울병원 순환기내과 교수와 함께 심장 재활훈련을 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제공
김정언 씨(50)가 가슴 통증을 느끼기 시작한 건 2022년이었다. 살짝 뻐근한 느낌이 들었다. 좀 심할 땐 가슴이 화끈거렸고, 더 심하면 바싹바싹 타는 듯한 작열감이 느껴졌다.
김 씨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역류성 식도염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해 8월 동네 내과에 갔다. 의사도 역류성 식도염 같다고 했다. 처방받은 약을 먹었더니 증세가 조금은 누그러든 것 같았다. 다만 완전하게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 후로도 가슴 통증이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여전히 김 씨는 큰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1년 4개월이 지났다. 2023년 12월, 김 씨는 삼성서울병원에서 급성 심근경색 진단을 받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성지동 삼성서울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2022년 여름의 증세가 협심증에 따른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 씨는 왜 병의 진행을 눈치채지 못한 것일까.
● 운동 안 하면 협심증 악화 모를 수도
당시 김 씨는 운동을 거의 못하고 있었다. 20대 때까지만 해도 보디빌딩 선수로 활동할 정도로 운동을 즐겼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런 여유가 사라졌다. 나중에는 소프트웨어 개발 업무를 맡다 보니 하루 종일 앉아 있어야 했다.
밤에는 따로 영업 일도 했다.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게다가 햄버거와 치킨, 콜라를 아주 좋아했다. 30대 초반에 62∼63kg이던 체중은 한때 95kg까지 늘어났다. 2018년에 결혼하면서 체중을 70kg대까지 줄이긴 했지만, 꽤 오랜 기간 비만 상태였던 것. 비만과 운동 부족, 잦은 술자리는 심장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다. 혈압은 정상이었지만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았고, 약한 당뇨도 있었다.
성 교수는 “만약에 김 씨가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었다면 협심증 초기 단계에서 병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슨 뜻일까.
협심증은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 일부가 막힌 병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은 혈관 면적 70% 내외가 막히면 가슴 통증 같은 증세가 나타난다. 협심증이 심해지면 가만히 있어도 흉통이 느껴지지만, 초기에는 움직일 때만 이 증세가 나타난다. 성 교수는 “김 씨가 계속 운동을 했다면 협심증 증세를 초기에 발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앉아만 있었기에 병의 진행을 눈치채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단계를 모두 거치면 급성 심근경색으로 악화할 수 있다. 관상동맥이 완전히 막혔기에 혈액을 공급받지 못한 심장 근육이 죽는다. 치명적인 상황이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가슴 통증이 지속적으로 나타나면 협심증부터 의심해야 한다.
통증 양상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성 교수는 “가슴이 조이거나 터질 것 같은 통증이 나타날 수도 있고, 명치 부위가 심하게 아플 수도 있다. 심지어 어깨가 아플 수도 있다. 이런 통증이 지속되면 빨리 병원에 가 보는 게 좋다”고 말했다. 김 씨는 “뜨겁게 달궈진 프라이팬에 덴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 독감 치료하다 심근경색 발견
2023년 12월, 김 씨는 갑작스레 고열에 시달렸다. 가슴이 너무 아프고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요란하게 뛰었다. 잠시 괜찮았다가 얼마 후 다시 아픈 상황이 반복됐다. 맥박은 1분에 140회를 넘겼고,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진통제를 먹고 버텼다. 하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잠을 자다 오전 1시에 깼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의료진은 독감 진단을 내렸다. 신속한 대처로 효과가 나타났다. 4시간 후에는 열이 떨어졌다. 다만 흉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의료진은 심장질환을 의심했다. 심근 효소 검사를 시행했다. 심근 효소는 급성 심근경색이 발병하면 증가하는 특성이 있다. 검사 결과 효소 수치가 정상 범위를 초과했다. 의료진은 입원을 연장했다.
성 교수는 “의료진은 크게 세 가지를 본다. 첫째가 증세, 둘째 심근 효소, 셋째 심전도 검사 결과다. 이 셋 중 두 가지 이상에서 심근경색이 의심된다면 그에 맞는 치료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씨의 경우 심전도 검사 결과는 모호했다. 다만 증세가 나타났고 검사할 때마다 심근 효소 수치가 조금씩 올라갔기 때문에 심근경색 가능성이 큰 상황이었다. 혹시 독감이 심근경색을 유발한 건 아닐까. 성 교수는 “그럴 수 있다”고 말했다. 관상동맥이 어느 정도 막힌 상황에서 독감이 생기면 염증 반응으로 인해 혈액이 더 응고되면서 혈전이 더 잘 만들어질 수 있다.
이튿날 아침에는 맥박이 160까지 올라갔다. 심근 효소 수치는 또 높아졌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의료진은 혈관 내부를 보기 위한 관상동맥조영술을 시행했다. 예상대로 혈관이 막혀 있었다. 의료진은 곧바로 막힌 혈관 부위를 넓히는 시술(관상동맥 중재술)을 시행했다. 이때는 풍선을 사용해 막힌 혈관을 넓혔다. 다만 막힌 혈관 모두를 뚫지는 못했다. 의료진은 우선 급한 부위부터 처치했고, 6개월 후 2차 스텐트 시술을 하기로 했다.
● “36회 심장 재활훈련 모두 끝내”
일단 위기를 넘겼지만 치료는 끝나지 않았다. 성 교수는 “관상동맥 중재술은 급성 심근경색 치료의 시작이지 끝이 아니다. 급성기 이후에 심장 재활 치료를 이어가야 재발을 막고 환자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씨도 심장 재활 훈련을 시작했다. 보통은 심근경색이 발생하고 4∼6주 후에 재활 훈련을 시작한다. 매주 3회씩 12주에 걸쳐 36회 병원을 찾아 훈련하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환자들이 이를 따르기는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심장 재활 훈련을 완수하는 환자는 전체 심근경색 환자의 2%에도 미치지 못한다. 김 씨는 중도 포기하지 않고 시간 날 때마다 병원을 찾았다. 다소 시간이 걸렸지만 36회 과정을 모두 끝낼 수 있었다.
재활 훈련은 의료진과 물리치료사 감독하에 진행된다. 환자 건강 상태에 맞게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 유연성 운동의 강도와 시간을 정한다. 가슴에 장비를 부착하고 모니터를 통해 심전도와 혈압을 점검하면서 운동하기 때문에 안전하다.
김 씨는 유산소 운동으로 트레드밀을 걷거나 실내용 자전거를 탔다. 처음에는 아주 짧은 시간만 걸을 수 있었다. 나중에는 30분 동안 이어서 운동할 수 있게 됐다. 운동 강도는 ‘약간 힘든 정도’를 유지했다. 심박수를 기준으로 한다면 최대 심박수 40∼60% 범위의 중강도 운동에 가깝다.
무거운 운동기구 대신 고무밴드나 가벼운 아령 같은 소도구를 사용해 근력 운동을 했다. 근력 운동은 일상 회복을 돕는 역할을 한다. 10∼15회씩 두세 세트를 진행했다. 유연성 운동은 주로 스트레칭과 호흡법으로 구성돼 운동 후 피로감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됐다.
지난해 6월, 예정돼 있던 2차 스텐트 시술을 받았다. 이후 김 씨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그전까지만 해도 계단을 오를 때 4개 층을 넘기지 못했다. 하지만 2차 시술이 끝나고 2개월이 지난 후부터는 운동 능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지난해 9월부터 느린 속도로 달리기를 시작했고, 10월에는 10분 이상 달릴 수 있게 됐다.
성 교수는 “심장 재활 훈련이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1차 시술 이후에 지속적으로 재활 훈련을 했기에 2차 스텐트 시술 후에 회복이 빨라졌다는 뜻이다. 단순히 스텐트 시술만으로는 이처럼 빨리 회복하기 어렵다는 것. 김 씨도 “재활 훈련의 기여도가 90%는 넘을 것”이라며 심근경색 환자들에게 이 훈련을 적극 추천했다.
이제 김 씨는 스스로 재활 훈련을 계속하고 있다. 달리는 재미에 푹 빠져 아침저녁으로 5㎞씩, 시속 6∼8km로 달린다. 매주 나흘 정도는 런지나 스쾃 같은 근력 운동도 한다. 물론 식단도 바꿨다. 햄버거와 콜라는 끊었다. 술은 아주 가끔, 최소한만 마신다.
김 씨는 건강에 만족하고 있을까. 그는 “내 건강 상태에 점수를 준다면 10점 만점에 8.5점 이상이다. 건강 능력치가 확실히 올라갔다. 이제 건강한 삶을 이어갈 것”이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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