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윤종]‘K차별이 더 무섭다’는 외국인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5월 30일 23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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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종 사회부장
김윤종 사회부장
“그 식당, 외국인들이 많이 가잖아요. 최대한 피하는 게 좋습니다.”

경기 시흥시 정왕동에 사는 한 주민의 이야기다. 경기 안산시 원곡동, 수원시 고등동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일어난 끔찍한 살인사건 때문이다. 중국 국적의 차철남은 17일 정왕동에서 2명을 망치로 때려 숨지게 했다. 자신의 돈을 갚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틀 뒤엔 ‘나를 무시한다’며 자택 인근 편의점주 등 2명을 흉기로 찔렀다. 19일 경기 화성시 동탄호수공원에선 40대 외국인이 흉기 3개를 들고 주변에 있던 한국인을 공격했다. 외국인 거주 비율이 높은 지역에선 “밤에 외국인 만나면 무섭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차철남 범죄로 외국인 혐오 확산

소셜미디어에는 ‘중국XX는 다 범죄자다. 잡아들여라’ ‘까무잡잡한 X들은 피해야 한다’ 등의 글이 게재되고 수많은 ‘좋아요’ 댓글이 달린다. 물론 차철남 등의 범죄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피해자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가해자가 외국인인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전체 외국인을 향한 혐오와 배척이 반복적으로 확산되는 것은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외국인 범죄 건수 자체가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 경찰청 통계를 보면 국내 외국인 범죄자 수는 2021년 2만9450명에서 지난해 3만5283명으로 4년 새 19% 증가했다. 다만 이 기간에 국내 체류 외국인 수도 195만 명에서 265만 명으로 36% 늘었다. 범죄율로 보면 외국인 범죄자는 10만 명당 1384명, 내국인 범죄자는 10만 명당 1986명이다. 밤늦게 골목에서 외국인 혹은 한국인을 마주쳤을 때 외국인이라고 더 위험한 건 아닐 수 있다.

낙인찍고 회피하기엔 우리 주변에 외국인이 너무 많다. 국내 체류 외국인 265만 명은 국내 전체 인구의 5.17%다. 100명 중 5명 이상이 외국인인 셈이다. 도심에선 식당과 상점에서 근무하는 외국인을 자주 볼 수 있다. 건설 현장이나 공장, 요양시설은 외국인 근로자 없이는 운영이 안 된다. 국내 초중고교 다문화 학생 또한 전체 학생의 5%에 달한다. 충북 청주시 봉명초교는 학부모 안내장을 베트남어 등 5개 언어로 배포한다.

“친한파로 한국 왔다가 혐한파 된다”

‘그들’이 아니라 이미 함께 살고 있는 ‘우리’인 셈이다. 그러나 적지 않은 국내 체류 외국인들이 혐한(嫌韓)이 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산업 현장에서 임금 체불과 부당한 대우를 겪은 외국인 근로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대학도 ‘혐한’ 제조소가 됐다고 한다. 한 외국인 유학생은 “K팝과 K드라마를 좋아해 유학까지 왔지만 기대했던 한국이 아니었다”며 “유학생을 ‘등록금 인출기’로만 본다. 형식적인 수업, 부실한 학사 관리에 인종 차별까지 겪으니 무서웠다”고 했다.

국내 외국인 유학생 수는 26만 명으로 전체 대학생의 10%나 된다. 저출산으로 학령 인구가 줄자 대학들이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서 돌파구를 찾아왔기 때문이다. 한국어는 물론이고 영어가 능숙하지 않아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도 일단 입학부터 시키는 학교들이 있을 정도다. 한 대학 총장은 “입학 후엔 관리가 엉망인 학교가 많다”며 “좋은 경험을 가지고 귀국해 친한파가 돼야 할 유학생들이 오히려 혐한파가 된다”고 경고했다. 이들은 자신이 겪은, 이른바 ‘K차별’을 소재로 유튜브에서 혐한 콘텐츠를 만들기도 한다. 백인이 아닌 베트남, 필리핀 등 아시아계가 지하철을 타면 옆 빈자리에 한국인들이 앉지 않으려 한다는 내용들이다.

조만간 국내 체류 외국인은 300만 명을 넘어서게 된다. 외국인 관련 범죄도 증가할 수 있는 만큼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하지만 외국인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며 혐오와 차별을 강화하는 우리의 모습은 범죄 못지않게 위험해 보인다. 불안을 이유로 벽을 세우기보단 상식으로 서로의 다름을 포용하는 것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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