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한 토론에, 이준석 유시민 막말까지
비방전과 네거티브에 밀린 정책선거
한국 경제 추락 막으려면, 2일 하루라도
공약 실현 가능성 따져 보는 시간 가져야
천광암 논설주간
‘6·3 대선’ 공식 선거운동이 오늘 종료된다. 임기를 2년여 남긴 대통령의 파면으로, 준비 없이 갑작스레 치러지는 선거라는 점에서, 차분한 공약 경쟁보다는 자극적인 네거티브 공방으로 흐를 것이라는 점은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치러진 2017년 ‘5·9 대선’에 비교해도, 이번 대선은 네거티브전 양상이 유독 두드러졌다. 정책과 공약의 제시는 처음부터 뒷전이었고 시종 거친 비방전이 이어졌다.
특히 지난주 선거판을 달군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 후보와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발언은 원색적인 ‘언어 폭력’ 그 자체였다. 반성인지 변명인지 알 수 없는 사과는 더 어이없었다. 이 후보는 “심심한 사과를 하겠다”면서도 “그대로 옮겨서 전한 것이기에 다른 방법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카메라 앵글 밖에서 했어도 문제 됐을 막말을 어린아이들까지 지켜보는 황금시간대에 지상파를 통해서 했다는 것은 어떤 이유를 갖다 대도 정당화하기 힘든 일이다.
유 전 이사장의 경우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배우자인 설난영 여사에 대한 자신의 말이 “거칠었던 것은 인정한다”면서도 “여성·노동 비하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진보 진영에서조차 “여성을 일반화해 비하하고 노동자를 멸시한 엘리트주의 발언”(권영국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 “노무현 대통령을 고졸 출신 대통령이라고 조롱했던 그들과 다를 게 무엇이냐”(한국노총) 등의 지적이 나오는 마당이다.
막말과 비하, 비방으로 얼룩진 선거전이 부를 부작용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대선 후 가장 시급한 정치·사회적 과제인 ‘국민 통합’을 저해하는 결정적인 장애물이 될 것이다. 또한 한국 민주주의의 복원 과정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상황에서, 저급한 선거전이 한국의 이미지에 끼치게 될 악영향도 그냥 간과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선거전 막판까지 가뜩이나 부실한 ‘정책 경쟁’과 ‘공약 검증’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돼버렸다는 점이다.
지금 한국 경제는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와 양상은 다르지만, 그 심각성 면에서 결코 못하지 않은 중증(重症) 위기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외환위기가 ‘빚으로 쌓아 올린 거품’이 꺼지면서 일시적으로 발생한 ‘유동성 위기’였다면, 지금은 성장엔진 자체가 꺼져가는 구조적이고 만성적인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최근 한국은행은 우리 경제의 올해 성장률 전망을 1.5%에서 0.8%로 대폭 낮췄는데, 이는 국제통화기금(IMF)이 4월 발표한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앞서 1분기 우리 경제의 성장률(―0.2%)은 주요 19개국 가운데 꼴찌였다. 과거 ‘경제 모범생’ 한국의 흔적은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들이 2∼7년 만에 뛰어넘은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의 벽’에 11년째 갇혀 있는 가운데, 성장률은 무섭게 추락하고 있다.
더 암울한 것은 잠재성장률의 하락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기본 시나리오)은 2025∼2030년 1.5%에서 2031∼2040년 0.7%, 2041∼2050년 0.1%로 곤두박질칠 전망이다. 비관적 시나리오로는 2040년대 후반부터 ‘마이너스 성장 시대’로 진입한다. 즉, 앞으로는 고물가를 각오하고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지 않는 한 1%대 성장 또는 0%대 성장 또는 마이너스 성장 중 하나를 오락가락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런 현실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 후보가 공통적으로 내건 ‘잠재성장률 3% 달성’ 공약은 사실상 ‘기적을 행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물론 도전적인 목표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다. 문제는 도전적인 목표를 얼마나 구체적인 정책으로 뒷받침하느냐 하는 것이다.
정상적인 선거전이라면 그 내용이 공약집 등을 통해 유권자들에게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갖고 전달됐어야 한다. 또한 그 내용은 후보들 간의 토론을 통해 철저하게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김 후보는 2차 TV토론이 끝난 뒤, 이 후보는 3차례 TV토론이 모두 끝난 뒤에야 공약집을 내놨다. 그러니 제대로 된 정책 토론이 이뤄지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이제 본투표까지는 하루가 남았다. ‘내란 심판’도 중요하고, ‘후보나 가족의 리스크’에 대한 검증도 중요하다. 그건 그것대로 투표장까지 안고 가자. 다만 2일 하루만이라도 한국 경제의 추락에 제동을 걸 후보가 누구인지를 차분히 따져 보는, ‘온전히 미래를 위한 시간’이 됐으면 싶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