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에 깊은 좌절과 국민의 외면만 남긴” 尹
불법계엄으로 파면되고 형사재판 받으면서
반성 없이 “자유민주-법치 수호” 운운
자격 없고, 중도 확장에도 도움 안 돼
천광암 논설주간
“대통령의 심기를 살피며 두 명의 당 대표를 강제로 끌어내렸고 (중략) 그런 움직임을 추종했거나 말리지 못한 정치, 즉 권력에 줄 서는 정치가 결국 계엄과 같은 처참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국민의힘 윤희숙 여의도연구원장이 지난달 24일 정강·정책 방송 연설에서 윤석열 대통령 집권 중 보여준 자당의 행태를 반성하면서 했던 말이다. 윤 원장은 “얼마 전 파면당하고 사저로 돌아간 대통령은 ‘이기고 돌아왔다’고 말했다. 무엇을 이겼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당에 남겨진 것은 깊은 좌절과 국민의 외면뿐”이라고 했다. 지도부 ‘묵인’하에 당 공식 싱크탱크 책임자가 방송에 대고 한 말이니 많은 당원들이 공감하는 바일 것이다.
국민의힘에 ‘깊은 좌절과 국민의 외면’만 안긴 윤 전 대통령이 17일 탈당했다. 김용태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등의 압박에도 수일간 버티기로 일관하던 윤 전 대통령이 탈당을 결정한 데는 최근 여론조사 결과들이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주 15일 나온 엠브레인퍼블릭 등 4개 사의 전국지표조사(NBS)와 16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조사에서 김문수 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각각 27%와 29%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모두 20%포인트 넘게 뒤진 것으로 나타났다. 윤 전 대통령은 최근까지도, 탄핵 국면 당시 자신의 지지율이 40∼50%에 달했기 때문에 자신이 당적을 유지하는 것이 김 후보의 대선 승리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주변에 내비쳤다고 한다. 이중삼중 ‘확증편향’의 벽으로 둘러싸인 윤 전 대통령의 이런 ‘자아도취적 착각’도, 거듭 확인되는 충격적인 수치 앞에서는 결국 ‘현타(현실자각 타임)’가 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배경이 무엇이건 이제 중요한 것은 윤 전 대통령의 탈당이 김 후보의 불리한 판세 극복, 특히 중도 확장에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하지만 아무리 이리저리 둘러봐도 큰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대선까지 겨우 17일이 남은, 너무 늦은 시점에 탈당이 이뤄졌다는 점도 하나의 이유일 수 있겠으나 보다 본질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윤 전 대통령은 17일 오전 페이스북에 탈당 선언문을 올리면서 그간의 비민주적 당 운영이나 불법 계엄 등에 대한 반성이나 사과는 일절 하지 않았다. 오히려 “국민의 힘을 떠나는 것은 대선 승리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 “이번 선거가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기회” 운운하며 자신의 탈당이 구국(救國)과 구당(救黨)의 ‘용단’이라도 되는 것처럼 포장했다. 이래서야 12·3 비상계엄에 대해 비판적 여론이 강한 중도층에 무슨 ‘감흥’을 줄 수 있겠는가.
하물며 위헌·위법한 계엄으로 헌법재판소에서 파면을 당한 윤 전 대통령에게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수호를 말할 자격이나 염치가 있는가. 헌재가 윤 전 대통령의 파면 사유로 든 ‘자유민주주의-법치주의 파괴 사례’만 한번 간단히 꼽아보자. 헌법과 계엄법에 명시된 비상계엄의 실체적 요건 및 절차적 요건 위반, 국군의 정치적 중립성 침해, 헌법에 따른 국군 통수 의무 위반, 국민의 정치적 기본권-단체행동권-직업의 자유 침해, 영장주의 위반, 선관위 독립성 침해, 사법권의 독립 침해…. 어느 것 하나 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더구나 윤 전 대통령은 지금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다. 얼마 전에는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의 부관이었던 20대 대위까지 법정에 나와 전화로 윤 전 대통령이 이 전 사령관에게 ‘총 쏴서라도 들어가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밝히는 등, 윤 전 대통령의 주장을 뒤엎는 현장 군인들의 증언이 이어지는 중이다. “법치” 운운하기는 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가.
윤 전 대통령은 이번 탈당 선언문에 앞서 11일에도 김 후보 지지를 호소하는 메시지를 낸 적이 있는데, 지난주 NBS 조사에는 그 메시지가 김 후보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물은 항목이 있다. 결과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응답(53%)이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응답(13%)을 압도했다. 중도층에서는 60% 대 7%로 격차가 더 컸다.
윤 전 대통령은 이번에 탈당 선언을 하면서 “백의종군(白衣從軍)”도 언급했다. 행여라도 탈당한 상태에서 김 후보의 당선을 돕기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뜻이라면, NBS 조사 결과에 나타난 민의를 곱씹어 보기 바란다.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훼손한 과오를 반성하고 사과하기 전까지는 어떤 말과 행동도 ‘역효과’만 날 것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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