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나리]국익 중심 실용외교에도… 분명한 ‘원칙’이 필요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5일 23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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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리 정치부 기자
신나리 정치부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한 첫날, 미국과 중국은 축하 메시지부터 기 싸움을 벌였다. 미국 백악관은 한국 대선에 대한 논평에서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에 대한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 행사를 우려하고 반대한다”며 중국을 견제했다. 그러자 중국 외교부는 미국을 향해 “간섭한 적 없다. 중한(한중) 관계를 이간질하지 말라”고 반박했다.

남의 잔칫날 손님들끼리 다투는 이 볼썽사나운 광경은 앞으로 새 정부가 헤쳐 나가야 할 험난한 미래를 예고한다. 이 대통령은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로 그 파고를 넘어 보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이 지금처럼 노골적으로 양자택일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실용외교를 펼칠 외교적 여지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실용적 태도를 강조해 왔다. 한미동맹을 외교의 근간으로 삼고 한미일 안보협력을 중시하겠다고 강조하면서, 동시에 중국에도 대만에도 ‘셰셰(謝謝)’하고 잘 지내면 되는 것이라며 이른바 ‘진영 외교’를 경계했다. 취임 첫 브리핑에서는 일본에 대해서도 ‘국가 간 신뢰’를 언급하며 실용적 관점에서 접근하겠다고도 했다.

모두와 잘 지내겠다는 의지만큼 중요한 건 방법론이다. 국익을 위해 모두와 잘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대원칙에 반대할 이는 많지 않다. 하지만 어떻게 실용외교를 구현할 것이냐는 방안은 아직 구체성이 떨어진다. 무엇보다 미국과 중국이 한국의 전략적 모호성을 가만 지켜볼지 의문이다. 이미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은 지난달 말 동맹국의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과, 경제는 중국과 협력)’ 기조에 경고장을 날렸다. 관세나 안보 관련 청구서가 날아오는 건 시간문제라는 우려도 나온다.

과거 민주당 정부가 오랫동안 유지해 온 ‘균형외교’ 기조처럼 미중 사이에서 적당한 ‘헤징(위험 분산 관리)’으로 모면하기에는 전략적 환경이 녹록지 않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관련해 ‘3불(사드 추가 배치 불가, 미국 미사일방어체계 불참, 한미일 군사동맹 불가) 1한(사드 운용 제한)’을 둘러싼 혼란이 중국의 경제보복과 한미동맹 불협화음을 불러왔던 문재인 정부 시절보다 현재 미중 갈등은 훨씬 심각해졌다. 미중이 대놓고 상대국에 대한 압박 전선에 동참하라고 몰아붙이는 시대에 자칫 섣부른 줄타기는 독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이재명 정부의 실용외교에도 흔들리지 않는 원칙이 필요하다. 한국이 ‘노(No)’라고 하면 하늘이 두 쪽 나도 안 되는 철칙이 있다는 걸 받아들이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 원칙은 북한의 비핵화가 될 수도 있고, 영토 침해 혹은 첨단 기술 이전이나 군사주권에 대한 이익 침해가 될 수도 있다.

실용외교의 준거가 국익 그 자체여도 안 된다. 국익은 시대 상황과 정책 결정자의 상황 인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개념이다. 국내 정치와 여론에 따라 미중에 대한 접근이 수시로 바뀌고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선택을 정당화한다면 실용외교는 국제사회에서 원칙 없는 기회주의적인 외교라고 비판받을 위험이 크다. 실용외교가 무원칙을 포장하거나 질서를 교란시킬 수 있는 도구로 비쳐선 안 될 것이다.

#이재명#실용외교#한미동맹#미중갈등#전략적 모호성#균형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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