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일 경희대 회계·세무학과 교수‘코스피 5,000 시대.’ 기대에 부응하듯 코스피는 가파르게 상승해 역대 최고점 진입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모든 주식 투자자가 함박웃음을 짓는 것은 아니다. 비인기 기업에 투자한 주주들은 뜨거운 시장에서도 차가운 손실을 마주하고 있다.
각자는 남들보다 잘할 것이라는 자신감으로 투자하지만, 시장을 이기기는 어렵다. 시험에서 모든 학생이 평균 이상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주식시장에서도 모든 투자자가 평균 수익률 이상을 올릴 수는 없다. 기업들이 성장할 것이라 믿는다면 이들 기업의 주식을 모두 보유해 시장 평균을 따라가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고 효과적이지 않을까? 이 아이디어를 실현시킨 이가 바로 인덱스펀드를 만든 뱅가드그룹 창업자 존 보글(1929∼2019)이다.
보글은 투자회사는 펀드 투자자들의 이익을 최우선에 둬야 하며, 이를 위해 판매비용과 운용수수료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높은 수익률’을 내세우며 전문가가 운영하는 펀드 대부분이 실제로는 성과에서 시장을 이기지도 못하면서 수수료만 지나치게 높다는 점에 의문을 가졌다. 그래서 시장 전체 종목을 그대로 따라 보유하는 방식의 펀드를 고안해냈다. 복잡한 리서치나 종목 선정을 하지 않기에 굉장히 낮은 수수료를 매길 수 있었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이 뱅가드그룹의 독특한 구조다. 일반적인 자산운용사는 외부 주주들이 지분을 보유하고, 회사는 이들의 이익을 위해 운영된다. 그 결과 자산운용사는 고객이 투자한 펀드 자금 운용에 높은 수수료를 부과해 이익을 많이 남기려 한다. 펀드 투자자가 아닌 주주가 우선이 되는 것이다.
보글은 뱅가드 운영 펀드들이 뱅가드 지분을 소유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펀드가 뱅가드의 주인이 되므로, 수수료를 높여 이익을 늘릴 필요가 없다. 회사 이익이 크다는 것은 결국 펀드에서 더 많은 부분을 가져왔다는 뜻인데, 회사 주인에게서 가져오는 것이니 의미가 없다. 따라서 회사 비용을 감당할 실비 수준으로만 수수료를 책정하는 것이 합당한 구조가 된다. 뱅가드는 실제로 지난 수십 년간 자산이 커질수록 규모의 경제를 통해 펀드 수수료를 계속 낮춰 왔다. 대표적인 S&P500 인덱스펀드 수수료는 업계 최저인 0.03% 수준이다.
보글의 믿음대로 인덱스펀드의 성과는 전문가들이 활발하게 운용하는 액티브펀드의 성과를 압도했다. 가치투자의 대가 워런 버핏은 보글에 대해 미국 투자자들에게 가장 큰 공헌을 한 인물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개인 투자자는 시장을 이기려 하지 말고, 낮은 비용의 인덱스펀드에 투자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버핏은 미리 준비한 유언장에 유산의 90%를 S&P500 인덱스펀드에 투자하라며 뱅가드를 추천하는 조언도 남겼다.
오늘날 뱅가드그룹은 세계 1위 블랙록에 이은 2위의 자산운용사(운용 자산 10조1000억 달러)다. 하지만 창업자 보글이 남긴 유산은 8000만 달러 수준으로, 금융계 거물들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 뱅가드의 지분을 가지지도 않았고, 관리가 딱히 필요 없는 저비용 구조의 회사라 높은 연봉을 받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투자자들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한 그의 이름은 ‘투자자들의 수호성인’으로 사후에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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