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일 경희대 회계·세무학과 교수4개의 커다란 모니터 한쪽에서 미국 국채 선물 금리가 튀고 있다. 환율, 유가, 주가지수가 오르내린다. 또 다른 쪽에선 외신 속보가 쏟아지는 가운데 상부에서 보낸 다급한 메시지가 깜박거린다. 색색의 글자와 숫자, 그리고 차트로 가득 채워진 모니터 앞에서는 고민하는 찰나의 시간조차 사치로 여겨진다.
증권사 트레이더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금융정보 단말기인 ‘블룸버그 터미널’은 전 세계 금융기관이 경제 상황 모니터링과 분석을 위해 필수적으로 사용하는 표준 툴이다. 연간 사용료가 금융사 대리급에 달해 ‘블대리’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이 단말기를 공급하는 블룸버그LP의 설립자는 마이클 블룸버그(83)다.
블룸버그는 미국 보스턴의 중산층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미 존스홉킨스대에서 경제학과 전자공학을 공부하고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뒤 월가의 살로몬브러더스에서 15년간 일하며 파트너까지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사내 정치에서 밀리면서 정보 시스템 부서로 좌천됐고, 1981년 회사가 인수되면서 해고 통지를 받았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큰 타격은 없었다. 회사의 지분에 대해 1000만 달러의 보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마지막 날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12시간을 일한 뒤 다음 날 아침 일찍 블룸버그LP를 설립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보 시스템 부서로의 좌천은 금융정보와 기술의 중요성을 깊이 이해하는 기회가 됐다. 당시 채권시장은 브로커 간 거래가 이뤄지는 구조여서 정보 접근이 쉽지 않았다. 블룸버그는 단말기에서 즉시 제공되는 고품질 정보에 대한 수요가 있음을 확신했다.
블룸버그LP의 성공 비결은 고객의 필요를 이해해 빠르게 대응하는 것이었다. 경쟁사들이 완벽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시간을 쏟는 동안 블룸버그는 계속 제품을 만들고 수정해 나갔다. 경쟁사가 단순히 가격 정보를 제공했다면 블룸버그는 다양한 가정을 기반으로 실시간 수익률 계산을 보여주는 등 우수한 분석 기능을 제공했다.
블룸버그LP는 금융 저널리즘을 개척해 미디어 그룹으로도 성장했다. 단순 기사 전달에 그치지 않고 해당 기업의 주가, 거래량, 관련 재무지표, 과거 유사 사례 등 데이터와 분석 도구를 한 화면에서 제공해 투자자의 빠른 의사 결정을 도왔다.
블룸버그는 사업 성공에 힘입어 정치에 진출해 2002년부터 뉴욕시장을 3번 연임했다. 12년 동안 뉴욕시 적자 해소, 신성장산업 육성, 공교육 개혁, 빈곤 퇴치, 식당 위생 규제 강화 등을 이끌어 냈다. 2020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후보 경선에 나섰으나 저조한 성적에 중도 하차하고 조 바이든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블룸버그는 1050억 달러(약 144조9500억 원)의 자산을 지닌 세계 14위 부자다. 그는 210억 달러 이상을 기부해 최근 2년 연속 미 최대 기부자이기도 하다. 미국이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한 이후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 미국 분담금을 대신 내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저는 운이 매우 좋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문을 열어주고 내 아이들과 손주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블룸버그의 말은 성공 신화를 일군 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미국 사회 지도층의 품격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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