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민우]트럼프 관세-이재명 법인세… 안팎에서 날아든 이중청구서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7월 24일 23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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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우 경제부 차장
박민우 경제부 차장
대미 상호관세 유예 기한이 딱 일주일 남았다. 미국 측은 당장 25일(현지 시간) 워싱턴에서 열릴 예정이던 ‘한미 2+2 통상 협의’도 돌연 취소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대로 협상이 공전하면 다음 달 1일부터는 미국으로 수출하는 모든 제품에 25% 상호관세 딱지가 붙는다.

이런 상황에 국내 기업들은 세금 청구서를 또 하나 받아들게 생겼다. 이재명 정부가 법인세 인상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르면 이달 말 발표될 정부 세제 개편안에 담길 가능성이 높은데 기업들 입장에선 상호관세 부과를 목전에 두고 이재명발 ‘법인세 서한’을 받는 셈이다. 글로벌 관세전쟁 와중에 세수 기반을 확대하겠다며 법인세율을 올려 자국 기업의 부담을 키우는 건 치명적인 자해 정책이 될 수 있다.

고율의 관세는 단순히 수출 감소에 그치지 않고 제조업 공동화(空洞化)를 초래할 공산이 크다. 현대자동차그룹 등이 현지화 전략을 강화하는 것처럼 미국 내 투자가 늘면 한국 내 생산 기반이 약화하고, 중소·중견 협력업체 생태계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대기업과 달리 현지화 비용을 부담할 수 없는 중소기업들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낙오되면 좀처럼 버티기 어렵다. 그간 한국 경제의 성장엔진 역할을 해온 제조업 기반이 해체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관세를 무기로 경쟁력 있는 해외 기업들을 유인하고 있는 반면 한국 정부는 법인세 인상을 추진하면서 국내 기업들을 밖으로 떠밀고 있다. 현행 국내 법인세 최고세율은 24.0%로 미국(21.0%), 일본(23.2%), 대만(20.0%)은 물론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1.5%)보다 높다.

구윤철 신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법인세 인하 이후 세수 감소가 컸다”며 “감세가 반드시 성장으로 연결된다는 보장이 없다”고 했다. 구 부총리의 말처럼 지난 2년간 법인세 수입은 41조 원이나 급감했지만 그가 문제로 지적한 세수 결손은 경기 침체와 저수익 구조를 피하지 못한 대기업들의 실적 악화가 근본 원인이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2023년 수조 원대 적자를 낸 탓에 지난해 3월 법인세로 ‘0원’을 신고했다. 재계에서는 ‘불황이 얼마나 심각하면 올해 법인세를 가장 많이 내는 곳이 수출기업이 아닌 한국은행이겠느냐’고 자조한다.

정부는 법인세율을 1%포인트 올리면 연간 2조 원가량의 세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지만 기업의 투자 심리가 회복되지 않으면 그마저도 쉽지 않다. 새 정부가 목표로 하는 ‘코스피 5,000’ 시대 역시 기업 실적 회복과 가치 상승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요원한 길이 된다.

지금 필요한 건 ‘세율 복원’이 아니라 ‘기업 활력 복원’이다. 정부는 불필요한 면세, 감면제도를 정비해 세원을 넓히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동시에 반도체와 배터리, 인공지능(AI), 전기차 등 첨단 전략산업에 대해서는 생산세액공제 등 ‘한국판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불릴 만한 과감한 세제 지원에 나서야 한다. 이재명 정부의 첫 세제 개편안은 기업의 구조적인 경쟁력을 회복하고 산업 재편을 가능케 할 첫 단추가 돼야 한다.

#상호관세#법인세 인상#한미 통상 협의#제조업 공동화#현지화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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