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장택동]또 칼부림… 공포에 떠는 스토킹 피해자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7월 31일 23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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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이 칼로 찌르면 어떻게 방어해서 도망가야겠다는 상상을 항상 하면서 다녔어요.” 동호회에서 만난 남성에게서 3년 넘게 스토킹을 당한 피해자 A 씨가 시민단체와 상담을 하면서 털어놓은 증언이다. 다른 피해자들은 “스토커가 불을 낼 수도 있고 어떤 일도 생길 수 있어서 무서웠다” “언제까지 두려움에 떨어야 하나 기약이 없는 게 힘들었다”고 했다. 이런 불안 속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끔찍한데, 더 심각한 문제는 공포가 현실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7월 29일 울산의 한 주차장에서 전 애인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중태에 빠진 20대 여성 B 씨는 7월 초 ‘헤어지자’고 한 뒤 스토킹에 시달렸다. 같은 달 26일에는 경기 의정부시에서 50대 여성이 스토커의 흉기에 찔려 목숨을 잃었다. 이들은 스토킹 신고를 했고 긴급 신고를 할 수 있는 스마트워치도 갖고 있었지만 비극을 피하지 못했다. 전자발찌 부착, 구금시설 유치 등 가해자의 접근을 보다 확실하게 막을 수 있는 ‘잠정조치’는 경찰이 신청하지 않거나 검찰이 기각해 이뤄지지 않았다.

▷스토킹은 이성 간의 내밀한 관계에서 파생되는 경우가 많아 어디서부터 범죄인지 모호한 측면이 있는 건 사실이다. 경찰은 “스토킹 범죄는 구속이나 구금 같은 강력한 제재가 가능한 만큼 행위를 엄격하게 해석해야 하는데 기준도, 판례도 많지 않아 헷갈린다”고 토로한다. 그렇다고 피해자의 생사를 가를 수 있는 중범죄에 수사기관이 손을 놓고 있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먼저 범죄의 전조(前兆)부터 놓치지 말아야 하는데, 휴대전화에서 스토킹의 징후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울산 사건의 가해자는 불과 엿새 동안 피해자에게 전화 168차례, 문자메시지 400여 차례를 보냈다. 의정부 사건의 범인도 스토킹 신고 이후 피해자에게 문자를 보냈다가 경찰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피해자가 전화번호를 교체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다시 만들어도 기어이 찾아내 연락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런 집착이 폭력이나 살인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스토킹 용의자의 통신 기록을 조회할 수 있도록 하면 범죄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학계에선 스토킹 처벌법에 규정된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지속적·반복적으로’라는 범죄 성립 조건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정당한 이유 없이’ 등 표현은 자의적 해석의 여지가 있고, ‘지속성·반복성’ 못지않게 ‘심각성’도 중요한 요소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토킹 위험성을 평가할 기준을 정립하고 피해자 보호조치 절차를 간소화하는 것도 시급하다. 희생자가 나왔을 때만 반짝 관심을 보이다 어물쩍 넘어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

#칼부림#스토킹#스토킹 처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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