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끊임없는 자기 연마라면… 노년은 쇠락 아닌 완성의 시간[김영민의 본다는 것은]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8월 3일 2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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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바람직한 생애주기가 있을까
선택 대부분은 사회 모델에 의존… 고민 없이 ‘생애주기’ 따르는 이유
조선 양반 삶 경로 담은 ‘평생도’… 결혼, 관직, 장수 등 이상향으로
공자는 연마-성숙으로 인생 설명… 배움 이어가는 새 주기 상상하자

관혼상제 등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겪게 되는 생활 과정을 단계적으로 담은 필자 미상의 ‘평생도’ 10폭 판화. 양교(亮轎)를 탄 고관의 행차 모습까지 조선시대 양반층에 권장된 생애주기가 잘 담겨 있다. 사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관혼상제 등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겪게 되는 생활 과정을 단계적으로 담은 필자 미상의 ‘평생도’ 10폭 판화. 양교(亮轎)를 탄 고관의 행차 모습까지 조선시대 양반층에 권장된 생애주기가 잘 담겨 있다. 사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인간은 모든 것을 혼자 숙고하고 선택할 수 없다. 인간은 그 정도로 대단하지 않다. 그럴 힘도 없고 시간도 없다. 오늘도 과연 어제처럼 삼시 세끼를 먹을 것인가, 라고 숙고하고 선택할 에너지는 없다. 삼시 세끼는 선택이 아니라 습관이자 모델이다. 인간은 정말 숙고해서 결정할 사안들 이외에는 대개 권위적 모델에 의존해서 살아나간다. 아무런 모델 없이 혼자 맨땅에서 생각을 거듭하면 심신이 지쳐버리고, 지쳐버린 나머지 정작 중요한 선택을 못 하게 될 수 있다.》

인생도 그렇다. 다들 처음 살아보는 인생이어서, 어떻게 인생을 살아갈지 막막하다. 그래서 대개 사회에서 제시하는 생애주기를 따른다. 먹고살 만한 집에서 태어났다?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별 고민 없이 사회가 정해주는 길을 따를 것이다. ‘나는 정말 고등학교에 진학해야 하는가!’라고 고민하는 중학생이 얼마나 되겠는가. 대학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다. 인기 있다는 전공을 선택하고, 무난해 보이는 직장에 다니다가, 일정한 나이가 되면 가정을 이루려고 한다. 마침내 확보한 아파트에서 자식을 낳아 키우다가 적당한 나이에 죽는 인생을 살려고 한다.

어째 다들 비슷한 인생을 살다가 죽는 것 같지 않은가? 이처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생애주기가 중요하다면, 각 사회는 바람직한 생애주기를 발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

조선시대에도 양반층에 권장되는 생애주기가 있었고, 그것은 ‘평생도(平生圖)’라는 회화 장르에 잘 드러나 있다. 평생도를 살펴보면, 그 시대 살 만한 사람들 다수가 선망했던 인생을 읽을 수 있다. 20세기 초가 되면 평생도가 판화로 제작될 정도로 많이 그리고 널리 사랑받았다. 그 당시 한국 사람 대다수가 양반이 되고 싶어서였을까. 평생도의 소비자가 잘사는 양반들에서 일반 사람들로 대폭 확장된 것이다.

채용신의 ‘평생도 병풍’. 사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채용신의 ‘평생도 병풍’. 사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이 평생도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비슷한 생애주기를 제시한다. 사람이 태어나면 일단 돌잔치를 한다. 성장하면 결혼식을 치른다. 글공부 끝에 과거시험을 통과한다. 벼슬살이를 시작해 결국 고관이 된다. 은퇴하고 회갑연을 치른다. 평생을 함께한 배우자와 회혼례를 거행한다. 이러한 조선시대 평생도의 특징은 다복장수(多福長壽)를 강조한다는 점, 그 다복함에 반드시 관직 생활이 포함된다는 사실이다.

조선시대 평생도에서 제시하는 바람직한 삶을 살려면, 일단 일찍 죽어서는 안 된다. 젊음의 정점에서 타버리듯 요절하는 팝스타의 인생 같은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독신으로 살아도 안 된다. 돈과 시간을 물 쓰듯 쓰는 화려한 싱글 인생 같은 것은 고려되지 않는다. 국가고시에 실패하면 안 된다. 공무원이 되지 않고 사업가나 연예인이 되는 길은 권장되지 않는다. 물론 조선시대니까 이러한 특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평생도에서 권장하는 삶이 당시 양반들이 존숭했다는 공자의 생애와도 크게 달라서 흥미롭다.

채용신의 ‘평생도 병풍’. 사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채용신의 ‘평생도 병풍’. 사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논어에서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15세에 배움에 뜻을 두었고, 30세에 스스로를 확립했고, 40세에 미혹됨을 벗어났으며, 50세에 천명을 알았고, 60세에 귀가 순해졌고, 70세에 마음 가는 대로 해도 도리에 어긋남이 없었다.” 이와 같은 공자의 인생 정리에는 결혼도 없고, 고시 공부도 없고, 관직 생활도 없다. 대신 끊임없는 자기 연마의 과정으로 일생을 정의한다. 그 자기 연마의 일생은 젊은 시절에 정점을 찍는 조숙의 흐름도 아니고, 중년기까지 상승하다가 이후 하강하는 곡선도 아니고, 완전히 원형을 이루어 회귀하는 과정도 아니다. 공자는 노년까지 꾸준히 성숙하는 인생 역정을 제시한다.

노년에 이르러 비로소 갖추게 되는 어떤 탁월함은 타고난 자질이 아니라 장시간에 걸친 노력과 배움의 결과다. 그토록 배움이 평생의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면, 노년이란 불가피하게 마주해야 하는 서글픈 최후가 아니라 전력을 기울여 추구해야 할 목표가 된다. 놀랍지 않은가, 노년이 연민이나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찬양의 대상이 되다니.

실로 공자에게 노년이란 쇠락해 가는 인생의 말로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평생에 걸친 자기 단련이 열매 맺는 시기였던 모양이다. 그 열매는 “마음 가는 대로 해도 도리에 어긋남이 없었다”는 문장에 압축되어 있다. 이것은 평생에 걸쳐 자신을 연마한 결과, 규범이 자신의 일부로 자리 잡아 제2의 천성이 된 상태다. 이렇게 탄생하는 제2의 천성은 욕망의 소거나 통제가 아니라 욕망의 자연스러운 실현 상태다. 규범이 요청하는 바와 자신이 욕망하는 바가 행복한 일치를 이룬 상태다.

이런 상태에 이른 이는 관직에 연연하는 인간도 아니고, 실수를 저지를까 전전긍긍하는 인간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례한 인간도 아니고, 의식적으로 고뇌하는 인간도 아니고, 매사에 이해타산을 저울질하는 인간도 아니다. 마음껏 욕망하지만 그 욕망이 규범에 어긋나지 않는 인간이다. 논어에서 공자가 제시한 생애주기의 목표는 고관대작이 되거나 많은 자식을 낳거나 엄청난 재산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배움을 통해 또 다른 자기 자신을 창조하는 것이다.

#인생#생애주기#조선시대#평생도#자기 연마#노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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