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태 위험지역 실태 파악부터 해야 한다[기고/이수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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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
7월 중순 연이은 폭우로 경남 산청군과 경기 가평군에서 발생한 인명 피해 21명 중 16명이 산사태로 인해 사망했다. 침수는 피할 수 있지만, 산사태는 순식간에 발생해 피해가 컸다. 붕괴 전후 위성사진을 보면, 피해 지역 주변 산지에서 각종 개발이 이뤄진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근본적인 문제들을 개선해야 반복되는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첫째, 관리 주체가 제각각이고 예측의 신뢰성도 떨어지기 때문에 위험지역으로 관리되지 않은 곳에서 대부분의 인명 피해가 발생한다. 산사태는 산 상부에서 하부로 연쇄적인 피해를 주지만 상부인 임야는 산림청이, 하부인 대지는 행정안전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해 사각지대가 발생한다.

실제로 산림청이 주로 지형 경사를 기준으로 제작한 ‘산사태위험지도’는 임야만을 대상으로 1∼5등급으로 색깔을 구분해 표시하고 있으며, 이번 산청·가평 산사태 인명 피해 지역의 하부 대지는 등급 자체에 포함되지 않았다. 또한 산림청이 2012년부터 지정한 3만여 곳의 ‘산사태 취약지역’에도 이번에 인명 피해가 발생한 9개 지역 중 1곳을 제외하고는 포함되지 않았다. 통합적인 관리를 위해 국무총리 직속의 일원화된 기구가 필요하다.

둘째, 피해 예측이 우선인 만큼 전국 약 100만 곳에 대한 실태 파악이 시급하다. 필자가 총괄 연구책임자로 참여한 2006∼2009년 행안부의 ‘사면 재해 예측 및 대응기술 개발’ 연구 과제에서도 100만 곳의 실태 파악이 우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산림청은 3만 곳의 산사태 취약지역을, 행안부는 3만 곳의 급경사지 위험지역만을 지정·관리해 전체의 6%만을 관리하고 있다. 나머지 94만 곳은 실태 조사조차 되지 않았다. 결국 위험 지정을 받지 않은 엉뚱한 곳에서 인명 피해가 발생하는 실정이다. 100만 곳에 대한 실태 조사를 정부 주도로 진행하면 50년 이상이 걸리므로, 주민 참여 방식이 병행돼야 한다.

셋째, 주민 중심의 재난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 최근 인명 피해 발생 지역을 조사해 보면 자연적인 산사태보다는 도로, 주택, 임도, 산책로, 농지·과수원 개간, 벌목, 태양광 시설 등 인간 활동이 이뤄진 지역에서 산사태가 시작된 경우가 전체의 70∼80%를 차지했다. 따라서 개발 단계에서부터 지질과 지형 특성에 맞춘 산사태 방지 대책을 세운다면 인명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 개발 현장은 24시간 실시간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산사태 위험도 역시 실시간으로 변한다. 현장 변화를 가장 잘 아는 주민이 전문가와 함께 실태 조사와 대응을 주도할 수 있도록, 민방위 조직에 산사태 등 재난 대응 기능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넷째, 보다 현실적인 인명 피해 방지 방안이 필요하다. 산사태 피해를 막기 위해 반드시 사방댐과 같은 대규모 구조물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국내 산지는 암반 위에 약 1m 두께의 얇은 토사층이 형성돼 있어 폭우 시 토사가 쉽게 붕괴된다. 하부 피해 주택을 보면 지표면에서 약 1m 높이의 토사 흔적이 남아 있다. 패널식이나 시멘트 블록 등 취약한 구조의 주택은 파괴됐지만, 콘크리트 주택은 비교적 안전했다. 따라서 산사태 위험지역의 하부 주택에는 산쪽에 2m 높이의 철근콘크리트 보호벽을 설치하고, 신규 주택은 철근콘크리트 구조나 1층을 비워둔 필로티 구조를 유도해야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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