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제조업체 10곳 중 8곳은 자사 주력 제품 시장이 ‘레드오션’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했다. 레드오션이란 한정된 수요를 놓고 기업들이 치열한 출혈 경쟁을 벌여 수익성, 성장성이 떨어지는 시장이다. 이런 시장에 있는 기업들은 과감한 투자와 혁신을 통해 신제품을 개발하고, 새 시장을 개척하지 못한다면 결국 고사(枯死)할 가능성이 크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전국 제조업체 2186개사를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82.3%는 주력 제품 시장이 포화 상태인 ‘성숙기’이거나, 시장 규모가 축소되는 ‘쇠퇴기’에 들어섰다고 답했다. 시장이 ‘성장기’ 또는 ‘도입기’에 있다는 응답은 17.7%에 그쳤다. 노후화한 제조업 부문을 대체할 한국 경제의 신산업 창출 능력에 심각하게 탈이 났다는 의미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수출을 주도하던 철강·석유화학·정유는 이미 심각한 레드오션 업종이 됐다. 글로벌 철강 수요는 올해 17억4000만 t으로 4년 연속 감소하고 있는데, 남아도는 생산능력은 세계적으로 6억 t이 넘는다. 중국 철강의 덤핑 피해가 큰 데다 대미 수출에 50% 고율 관세까지 붙어 한국 철강업체들은 초유의 위기를 맞고 있다. 석유화학 업체들도 중국과 중동 산유국의 대규모 설비 증설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구조조정이 없으면 절반이 3년 안에 도산할 수 있다는 경고음이 나온다.
난국을 타개하려면 기업들이 혁신기술을 앞세워 경쟁이 적고, 부가가치가 높은 ‘블루오션’ 시장을 적극 발굴해야 한다. 하지만 대한상의 조사에서 현재의 주력 제품을 대체할 신사업에 착수했거나 검토 중이란 응답은 42.4%뿐이었다. 절반 이상의 기업은 열악한 자금 사정, 신사업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공격적 경영을 주저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무너진 미국의 제조업을 되살리겠다며 세계를 상대로 관세전쟁까지 벌여 자국 기업을 위한 높은 담을 쌓고 있다. 우리 정부도 기업들의 신산업 진출, 사업 전환 지원을 서두르고, 필요한 경우 위험도 나눠서 져야 한다. 초기에 이익을 내기 어려운 신기술·신사업 지원 방식은 법인세를 깎아주는 대신 보조금을 직접 제공하는 쪽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특히 노사 갈등, 경영진과 주주의 충돌을 부를 수 있는 제도 변화는 구조 전환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만큼 자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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