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서현]새 교육장관 후보 ‘1호 과제’… 자퇴 권하는 교육 바꾸기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8월 7일 23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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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현 정책사회부 차장
이서현 정책사회부 차장
서울의 고교 2학년 정모 양은 지난달 기대보다 못한 기말고사 성적표를 받고 한참 눈물을 쏟은 뒤 자퇴를 고민했다고 한다.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 일부는 검정고시를 택해 이미 학교를 떠났다. 또래 집단의 영향을 많이 받는 연령대라 친구들이 학교에서 사라질 때마다 남은 아이들 마음은 뒤숭숭하다. 중간·기말고사 성적이 나오면 ‘나도 자퇴할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고 한다.

대학 입시를 위해 공교육을 포기하고 전략적 자퇴를 택하는 고교생들이 늘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기본통계에 따르면 고교 자퇴생 수를 집계한 2023년 ‘고교 학업 중단율’은 2%로 2011년 이후 최대치를 나타냈다. 2020년 1.1%였던 고교 학업 중단율은 최근 4년 사이 꾸준히 증가했고, 2021년부터 매년 2만 명이 넘는 고교생들이 학교를 떠났다.

고교 자퇴는 1, 2학년에 집중돼 있다. 중간·기말고사에서 기대보다 낮은 점수를 받으면 학생들은 정시에 집중하기 위해 자퇴한 뒤 입시학원에서 검정고시와 대입을 준비한다.

공교육을 떠나는 자퇴 결정이 합리적 선택이 되는 이유는 현재 고교 1학년 교실을 보면 드러난다. 대입 정책과 엇박자가 나는데도 올해 3월부터 시행된 고교학점제, 학기당 많게는 20개씩 몰려 학생들은 ‘수행 지옥’, 학부모는 ‘엄마 숙제’라고 부르는 수행평가, 그리고 내신 5등급제가 ‘삼중고’로 학생들을 옥죄고 있기 때문이다. 내신 5등급제가 시행되며 1등급(상위 10%) 구간이 9등급제(1등급 상위 4%)보다 넓어지면서 학생들에게는 ‘상위 등급에서 탈락하면 입시는 끝’이라는 부담감으로 작용하고 있다.

서울의 대형 입시학원 관계자는 “고교 1학년 때 자퇴한 학생들은 4월, 8월 검정고시와 그해 수능을 같이 준비한다. 검정고시에 합격한 뒤 이듬해부터 2년 연속 수능을 치면 수능을 사실상 3번 경험한 ‘현역’으로 유리한 위치에서 입시를 치르는 셈”이라고 말했다.

새 정부 첫 교육부 장관으로 지명된 이진숙 전 충남대 총장 낙마 직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새 교육부 장관 후보’라는 제목으로 교사 출신 국회의원들 사진과 명단이 공유됐다. 게시글에는 ‘최소한 입시 현장은 알지 않겠냐’는 댓글이 이어졌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로 사교육 부담을 덜어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교육정책에 무지함을 드러낸 모습에 실망한 여론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고교 1학년 학부모 이모 씨는 “인생에 학교는 반드시 필요한 곳이지만 지금 학교는 좌절과 낙담만 가르치는 곳이다. ‘학교는 바보 같은 선택, 자퇴는 현명한 선택’으로 몰아가는 환경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 전 후보자가 청문회 당시 건네받은 ‘커닝 페이퍼’에는 ‘곤란한 질문에 즉답 X’라고 적혀 있었다. 새로 임명될 교육부 장관이 가장 먼저 답해야 할 곤란한 질문은 ‘입시를 이유로 공교육을 떠나는 아이들을 어떻게 붙잡을 것인가’다. 정부는 수행평가 수업시간 내 시행, 고교학점제 개편 자문단 구성 등 처방을 내놓고 있지만 이러한 단기 대책으로 학생들의 자퇴를 막을 수 있을까. 이 질문에는 반드시 즉답이 필요하다. 답변을 대신할 커닝 페이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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