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군사령부는 창설 후 75년간 정전체제 관리 등 한반도 안보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달 이재명 정부가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표류해온 북한 주민들의 송환 과정에서 남과 북은 유엔사 채널로 사전 조율을 했다. 유엔사가 현재 남북 간의 유일한 공식 소통 창구라는 점이 확인된 것이다.
유엔사의 탄생은 1950년 6월 26일 아침, 대한민국 국회가 만장일치로 북한의 남침을 규탄하고 유엔 차원의 즉각적인 조치를 요청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키면서 시작됐다. 이에 따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82호(북한의 침략 규탄), 83호(회원국의 군사지원 권고), 84호(통합지휘부 설립 권고) 등 일련의 결의안을 신속히 채택했고, 이를 근거로 유엔사가 설립되었다.
당시 유엔사의 전반적인 권한은 미 정부와 미 합동참모본부에 일임될 수밖에 없었다. 긴박한 전시 상황에서 유엔의 합의나 결의를 기다리며 한가하게 작전지휘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3년여의 참혹한 전쟁에 쉼표를 찍은 정전협정은 ‘군사적 충돌의 일시적 중단’일 뿐 70여 년이 넘도록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는 미완으로 남아있다.
한미동맹의 최초 연결고리였던 유엔사는 정전관리를 책임지고, 한반도 전쟁 발발 시 회원국의 전력을 제공하고, 18개 회원국과 후방 기지 등을 보유한 엄청난 억제력의 산실이다. 이런 요소들은 대한민국 안보에 양지를 제공한 유엔사의 ‘빛’이라고 할 수 있다.
빛은 늘 그림자를 동반한다. 유엔사는 한반도 안보의 안전판 역할을 해 온 반면 비무장지대(DMZ) 출입 통제 등에서 한국 정부의 자율성을 제약하는 사례도 반복해 왔다.
이는 유엔사의 ‘안보 제공자’로서의 역할과 ‘외부 통제자’로서의 한계가 공존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과거 통일부 장관의 DMZ 대성동 방문 불허, 독일 대표단의 고성 최전방 감시초소(GP) 방문 무산, 타미플루 대북 지원 불허, 지난달 유흥식 추기경의 DMZ 방문 불허 등은 모두 우리 정부와 유엔사의 소통 부재와 인식의 격차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랜 시간 정치적 해법의 부재 속에서 임시적 성격의 정전 체제를 국제 군사 조직인 유엔사가 전적으로 관리함으로써 불편한 상황들이 초래됐다.
한국은 보수와 진보 정부 모두 유엔사에 대한 전략적 대응이나 유기적인 소통을 소홀히 해 온 것이 사실이다. 대부분의 사안은 사후 대응 중심으로 이뤄졌고, 그로 인해 유엔사와의 관계에서 혼선이 반복돼 왔다. 유엔사를 무조건 양보하고 따라야만 하는 안보 파트너로만 인식하거나, 반대로 외세에 의한 통제로만 간주하고 존재를 무시하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유엔사는 대한민국이 요청해 받아들인 국제 군사 기구이며, 우리의 전략적 이익에 부합하도록 늘 함께하고 활용해야 할 대상이다.
외교, 국방, 통일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고 상시적이고 전략적인 소통과 조율을 가능케 하기 위한 ‘유엔사 전담 대사’의 신설 등 대책이 필요하다. 이는 대한민국이 유엔사의 ‘수용국(Host Nation)’이자 ‘최종 사용자(End User)’라는 본연의 위상을 찾게 해줄 것이며 유사시 효율적 대응 체계 마련에도 이바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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