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조선시대 과거 시험을 보는 사대부들이 오매불망 선망하는 꽃이 있었다. 임금이 급제자들에게 내리는 어사화(御賜花)였다. 진짜 꽃은 아니었다. 길게 쪼갠 가느다란 나무를 종이로 감싼 후, 여러 색깔의 종이로 만든 꽃을 줄줄이 단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꽃이었기에 모두가 바라 마지않는 꽃이었다. 급제자는 이 영광의 꽃가지를 머리에 꽂고 3일 동안 일가 친척에게 인사를 다니며 만천하에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릴 수 있었다.
다른 장식들도 있었을 텐데 왜 꽃이었을까? 명확한 기록은 없지만 15∼20년이 걸린다는 과거 공부를 끝내고 드디어 갈고닦은 능력을 꽃피울 때가 됐다는 뜻이지 않았을까 싶다.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능소화도 어사화로 불렸다는 점을 보면 가끔은 생화를 쓰기도 한 듯하다. 조선시대에 능소화는 기품이 있다 하여 양반집에서만 기를 수 있었던 ‘양반꽃’이었다.
그런데 이 꽃을 잘 보면 단순히 아름다움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꽃잎에 나 있는 긴 선들이 그거다. 그냥 나 있는 것 아닌가 싶지만 살아 있는 세상에 이유가 없는 게 없듯, 이 선들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꽃은 아름다움의 상징이지만, 꽃의 본래 목적은 세대를 이어갈 씨앗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움직일 수 없으니 자유자재로 돌아다닐 수 있는 벌과 나비 같은 매개동물들을 오게 해 꽃가루받이를 하게 하는 장치가 바로 꽃이다. ‘여기에 맛있는 꿀이 있으니 어서 오라’는 화려한 간판이자 초대장이다.
문제는 이런 손짓을 하는 게 혼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꽃들이 피는가. 공급이 넘치면 경쟁은 필연이다. 고객이라 할 수 있는 벌과 나비를 위한 더 좋은 서비스들이 속속 등장했고 능소화에 있는 선들도 그중 하나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을 텐데, 우리 관점이 아니라 벌과 나비들의 관점에서 보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꽃잎 바깥쪽에서 가운데를 향해 있는 이 선들은 ‘이쪽으로 오면 달콤한 꿀이 있다’는 신호다.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공항에 비유하자면 착륙 유도선 역할이다. 요즘 능소화와 함께 자주 볼 수 있는 비비추꽃에 있는 선들 역시 마찬가지다. 능소화는 더 나아가 비교적 큰 편인 다섯 장의 꽃잎을 모두 연결한 통꽃 구조로 찾아온 고객들에게 흔들림이 덜한 착륙장까지 제공한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머물수록 꽃가루받이에 도움이 되는 까닭이다.
여담이지만, 이 통꽃 구조 역시 조선의 사대부들에게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꽃들의 세상에서 드문 편인 통꽃의 능소화는 우아함을 한껏 드러내다가 때가 되면 통째로 툭 떨어진다. 꽃잎이 하나씩 지지 않고 꽃 하나가 그대로 떨어진다. 흰 눈 위에 툭 떨어지는 붉은 동백꽃만큼 강렬한 대비 효과는 없지만 지는 모습은 비슷하다. 양반꽃으로 불렸던 것도 뜻을 품은 선비라면 모름지기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마음이 투영된 게 아니었을까 싶다.
어쨌거나 살아 있음을 지향하는 생물학적 관점으로 보면 능소화는 더 나은 삶을 위한 과정에서 아름다워진 것이다. 스스로를 아름다운 존재로 만들었다. 아무렇게나 사는데 잘 살아 있는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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