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임수]‘검사’ 이복현 떠난 자리 ‘변호사’ 이찬진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8월 20일 23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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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임수 논설위원
정임수 논설위원
3년 전 윤석열 정부의 첫 금융감독원 수장으로 검사 출신의 이복현이 발탁됐을 때 이런 말이 돌았다. 윤 전 대통령이 장관급을 포함해 요직 3개를 제안했는데, 이 전 원장이 가장 자신 있고 인사청문회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금감원장 자리를 ‘픽’했다는 거였다. ‘윤석열 사단의 막내’라는 위세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3년의 임기를 다 채우고 떠난 이 전 원장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기존 금감원장 역할을 한참 벗어났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대통령의 복심’답게 임기 내내 금융위원장보다 더 센 금감원장으로 통했고, 직무를 넘어선 돌출 발언으로 정책 엇박자와 월권 논란을 빚었다. 검찰이 피의 사실을 흘리듯 감독·검사 과정을 언론에 공개하며 금융사를 압박하기도 했다.

‘李변호인’ 7명 청문회 없는 요직

이제 검사 출신이 떠난 자리에 변호사 출신이 왔다. 이번에는 큰돈을 빌려줄 정도로 막역한 대통령의 38년 지기 절친이다. 지난주 취임한 이찬진 신임 금감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연수원 내 운동권 서클인 기(期)모임과 노동법학회에서 함께 활동했다. 이 대통령의 성남시장 시절부터 각종 송사를 도왔고, 대통령 당선으로 재판이 중단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과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사건에서 변호인을 맡았다. 2019년에는 이 대통령의 분당 아파트를 담보로 5억 원을 빌려주기도 했다.

그동안 금감원장에 학계나 정치인 출신이 발탁되면 파격 인사라는 얘기가 나왔는데, 대통령 최측근인 법조인 출신이 연이어 자리를 꿰찬 셈이다. 금융권 안팎에서 ‘이복현 시즌2’가 펼쳐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 대통령이 금융권의 ‘이자 놀이’를 질타하고 장기 연체자 빚 탕감, 100조 원 펀드 등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심복인 이 원장이 총대를 메고 금융회사 군기 잡기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참여연대·민변 등을 거친 이 원장은 금융 분야 전문성이 떨어지고 뚜렷한 경력도 없어 우려를 더한다. 정부는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을 지냈고 자본시장 회계 관련 소송을 맡은 적이 있어 문제될 게 없다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국정기획위원회에서도 사회1분과장으로 새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을 맡았던 이 원장을 금융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금융감독 수장으로 임명하는 게 맞느냐는 것이다. 내 편이라는 이유라면 검찰 선후배들을 요직 곳곳에 앉혔던 윤 전 대통령과 다를 게 없다.

이 원장을 포함해 새 정부에서 대통령실과 정부, 여당에 포진한 ‘이재명 변호인’은 모두 12명으로 늘었다. 지난해 총선에서 대장동 5인방이 국회에 입성한 데 이어 최근 7명의 변호사가 법제처장, 국가정보원 기조실장, 대통령실 민정비서관 등 청문회 없이 임명만 하면 되는 요직에 올랐다. 이 대통령을 변호한 데 대한 대가성 인사이자 임기가 끝나면 재개될 재판에 대비한 방탄성 보은 인사란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윤석열의 ‘검찰 공화국’이 저무니 이재명의 ‘변호사 공화국’이 열렸다는 얘기를 들어도 이상할 게 없다.

‘금감원의 정치화’ 더는 없어야

이복현 전 원장은 두 달 전 퇴임식에서 금감원 임직원과 금융회사, 유관기관을 상대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불미스러운 일로 중도하차하는 것도 아닌데 금감원장이 퇴임사에서 거듭 ‘사과’, ‘송구’, ‘제 부족 탓’을 언급한 건 이례적이다. 여의도 저승사자로 군림한 데 대한 사과일 것이다. 이찬진 원장도 금융권 안팎의 논란을 의식한 듯 “어떤 괴물이 왔나 궁금하실 텐데 과격한 사람이 전혀 아니다”, “모든 의사결정을 독단적으로 하지 않겠다”며 한껏 몸을 낮춘 모습을 보이고 있다. 3년 뒤에도 이 같은 말이 유효할지, 또다시 금융감독 업무를 정치화하지 않을지 이 원장의 행보를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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