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장원재]3년간 혈세 300억 낭비하고 문 닫는 1기 국교위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8월 19일 23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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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 논설위원
장원재 논설위원
장관급 위원장을 포함해 공무원 31명이 근무하는 정부 조직이 있다. 상근자 외에 100명 넘는 전문가를 위원이나 전문위원으로 두고, 3년 동안 예산 300억 원을 썼지만 제대로 된 정책 보고서 하나 못 냈다. 사회 통합을 내세웠지만 볼썽사나운 내부 주도권 다툼만 뉴스가 됐다. 국민 혈세를 계속 쓰며 이런 조직을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공약으로 출발했다. “백년대계인 교육 정책이 정권 따라 흔들리면 안 된다. 사회적 합의로 향후 10년 중장기 교육 정책의 틀을 마련하자”는 취지였다. 의도는 좋았다. 문제는 교육 전문가 사이에도 추구하는 가치가 다른데 어떻게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지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3년간 합의 대신 내부 다툼만

국교위 법은 문 전 대통령 임기 말인 2021년 7월 국회를 통과했고, 국교위는 윤석열 전 대통령 취임 후인 2022년 9월 활동을 시작했다. 진보 정권에서 틀을 잡고 보수 정권 때 가동된 것이다. 위원 21명 중 대통령이 5명, 국회가 9명을 임명하는데 이배용 위원장을 포함해 과반이 보수 성향으로 채워졌다.

국교위 내부에선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난이도와 유형을 어떻게 할지, 고교 내신은 절대평가와 상대평가 중 어떤 게 나은지, 고교 평준화를 유지할지 등을 두고 격론이 이어졌다. 입시 변별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보수 진영과 지나친 경쟁을 지양하고 학업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진보 진영의 의견 차이는 토론을 거듭해도 좁혀지지 않았다.

수적으로 밀린 진보 진영은 “다수파가 밀실에서 담합한 안을 밀어붙인다”며 공개적으로 반발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중장기 교육계획을 맡은 진보 측 전문위원 8명이 전원 사퇴해 전문위원회를 새로 꾸려야 했다. 의견이 모아지긴커녕 교육계는 더 분열됐고, 지난해 9월 발표 예정이었던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 시안’ 발표는 4차례나 연기됐다. 결국 국교위 1기는 중장기 교육계획을 한 번도 발표하지 못한 채 다음 달 임기를 마치게 됐다.

진영 갈등의 최전선이 됐다는 점 외에도 국교위는 여러 한계를 드러냈다. 실질적 권한이 없었던 과거 자문기구를 보완하기 위해 의결·집행 기구로 출범했지만 5년 단위 교육계획을 발표하는 교육부, 초중고 교육을 관할하는 시도교육청과 역할이 겹쳐 ‘옥상옥 논란’이 이어졌다. 장기적·거시적 접근이 목표였지만 교육과정 및 대입제도 심의 때 지엽적 지적만 하고 원안을 통과시키며 거수기 논란을 자초했다. 결국 내부에서도 ‘총체적 실패’란 지적이 나왔고 교육계 안팎에서는 ‘국교위 무용론’이 확산됐다.

‘조국 딸 사과’ 새 위원장의 정치 편향 논란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때 다양성과 공정성을 갖춘 위원 구성, 시민 참여 확대 등을 통해 국교위가 제 역할을 하도록 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교육철학이 다른 다양한 위원과 시민이 참여한다고 사회적 합의가 도출될까. 설사 합의가 나온다 한들 5년 후 바뀐 정권이 이를 존중하고 받아들일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더욱이 2기 위원장으로 내정된 차정인 전 부산대 총장은 이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동기로 초중고 교육에는 문외한에 가깝다. 과거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총선에 출마했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의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입학 취소를 두고 “미안하다”고 했을 정도로 정파적 색채가 짙다. 그가 이 대통령이 약속한 ‘공정성을 갖춘 위원’이라고 볼 수 있을까. 또 임기가 3년인 위원과 달리 2년인 전문위원 중에는 여전히 보수 성향이 많아 무리하게 진보 정책을 밀어붙일 경우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차 내정자가 이렇게 산적한 과제를 풀어내고 국교위를 벼랑 끝에서 구하지 못하면, 그때는 정말 국교위 폐지만이 남은 답일 것이다.

#국가교육위원회#교육정책#사회적 합의#진보 보수 갈등#입시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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