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황학동 ‘할아버지칼국수’의 손칼국수. 칼국수 한 그릇에 5000원이다. 김도언 소설가 제공
김도언 소설가칼국수를 싫어하는 한국인이 있을까. 라면, 짜장면과 함께 칼국수는 서민의 한 끼를 간편하게 책임지는 음식이다. 전국 재래시장에는 어김없이 어지간한 손맛을 자랑하는 칼국숫집들이 들어서 있다.
칼국수는 레시피도 유별날 게 없어 가정집에서도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어머니나 아내가 “오늘 점심은 칼국수”라고 하면 남자들은 한두 시간 전부터 설렌다. 보통 집에선 마른 멸치를 펄펄 끓여 육수를 내고 면은 밀가루 반죽을 치댄 뒤 돌돌 말아 썰어 만든다. 그런데 사실 말이 그렇지 요즘은 칼국수 생면도 동네마트에서 다 판다. 육수도 티백이나 고형의 코인 형태로 만든 것을 사다가 쓸 수 있다. 참 편리한 세상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집에서 만들어 먹는 칼국수는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시장 칼국숫집이 뚝딱 만들어내는 그 치명적인 맛을 좀처럼 내지 못한다. 기분 탓일까.
서울 중구 황학동 벼룩시장에서 청계천 영도교를 건너면 오른쪽에 ‘할아버지칼국수’가 있다. 업소용 중고 가전제품을 파는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인 골목 초입 쪽이다. 이 집은 인근 상인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귀한 노포다. 어떤 단골은 필자에게 이 집이 외부인들에게 알려지는 것이 서운할 정도라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벼룩시장을 찾는 외지인들에게도 입소문이 나서 식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주말이나 공휴일 점심시간에는 웨이팅을 각오해야 할 정도다. 휴무일은 따로 없다. 출입구에 주인이 피곤하면 문을 닫는다고 써놓았다.
이 집은 3대에 걸쳐 50년 넘게 장사를 이어오고 있다. 놀라운 건 가격인데 칼국수 한 그릇에 5000원이고 곱빼기라고 해봐야 겨우 500원을 더 받는다. 싸다고 해서 맛까지 대충 후려쳤을 거라고 생각하면 결례다. 3대에 걸친 이 노포 자존심의 처음과 끝은 바로 맛이다. 육수는 멸치와 마늘, 건표고를 우려내 맛이 깊고 진하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면이다. 이 집만의 반죽 비법과 숙성을 통해 역대급 꼬들꼬들함을 구현한다.
다섯 평 정도 되는 좁은 내부에는 바 형태의 테이블이 벽면을 따라 놓여 있다. 의자도 원통형 이동식이어서 혼자라도 무안하지 않다. 벼룩시장을 끼고 있는 노포답게 벽에는 ‘로봇 태권V’ 같은 옛날 애니매이션 포스터가 붙어 있다. 이런 레트로 감성이 칼국수에 감칠맛을 더하는 특별한 양념처럼 느껴진다. 한 젓가락씩 떠먹다 보면 어느새 그릇이 깨끗하게 비워진다. 이렇게 맛있는 칼국수를 옛 감성과 추억의 세례 속에서 먹고 5000원만 내고 나오는 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다. 그래서 이런 생각도 하게 된다. 노포는 어쩌면 공익을 추구하는 본능 같은 게 있는 건 아닐까.
시장 하늘에 석양이 붉게 타오르면 이제 장막을 걷고 셔터들을 내리는데, 장사가 시원찮았거나 아예 공친 상인들은 상심과 피로에 젖은 마음을 달래기 위해 ‘할아버지칼국수’를 찾는다. 공익은 공동체가 함께 나누고 누릴 수 있는 행복의 다른 말일 테다. 먹고사는 일의 노곤함과 신산함을 생각할 때 밥 한 그릇, 칼국수 한 그릇이 주는 행복은 우리 삶을 끌고 가게 하는 힘이다. 이 사실은 신조차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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