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꾼 사위들의 고해소일까… 장모님이 끓인 해장국의 맛[김도언의 너희가 노포를 아느냐]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8월 28일 2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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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구기동 ‘장모님해장국’의 해장국특. 김도언 소설가 제공
서울 종로구 구기동 ‘장모님해장국’의 해장국특. 김도언 소설가 제공

김도언 소설가
김도언 소설가
결혼한 한국 남성들에게 장모는 어떤 존재일까. 아마도 삼엄하면서도 푸근한 양면성을 보여주는 존재일 것이다. ‘어머님’이라고 부르지만 빚이라도 진 것처럼 공연히 황송한 마음을 지울 길 없는 그런 대상. 그렇다면 딸 가진 한국 여성에게 사위란 무엇일까. ‘백년손님’이란 말도 있거니와 하시라도 차려주고 챙겨주고 싶은,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존재가 아닐까.

서울 은평구와 종로구의 경계를 이루는 구기터널 인근, 북한산 등산로 한쪽에 ‘장모님’이란 상호를 단 해장국집이 있다. 30년 넘은 노포로 제법 이름이 났다. 현재 대표는 강순이 씨다. 원래 주인은 그의 친정 엄마였다. 전북 익산 출신인 강 대표는 어머니가 운영하던 ‘장모님해장국’에서 일을 도우며 손맛을 배웠다. 이후 상호까지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다.

붉은 벽돌로 지은 3층짜리 연립주택을 개조한 식당 내부로 들어서면 노포 특유의 안정감이 느껴진다. 좀 더 안쪽에는 간이 지붕을 얹은 야외석도 있어 북한산 자락의 청량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이날 필자가 주문한 것은 ‘해장국특’. 일반해장국보다 3000원을 더 받아 1만4000원이다. 그런데 뚝배기를 받아 수저로 휘젓고 보니 비싸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고깃살과 양, 선지, 우거지가 2인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푸짐하다. 24시간 사골을 고아서 냈다는 국물부터 한술 떠본다. 군내가 전혀 없고 맑으면서도 깊고 극진하다. 국물에 한우 특유의 육향이 느껴졌다.

이번엔 양과 선지, 우거지를 크게 떠 입에 넣어봤다. 어찌 이리 고소하고 부들부들한지…. 뭐랄까, 건강한 맛이 있다면 바로 이 맛이 아닐까. 시중의 웬만한 해장국집들은 고춧가루를 배합한 빨간 양념을 쳐서 매운맛이 승한 반면 이 집은 맑은 국물을 고수한다. 그만큼 신선한 재료에 자신이 있다는 것일 테다. 참, 맛이 다소 심심하다고 느끼는 식객들을 위해선 다소 성글게 간 고춧가루도 제공된다. 이걸 기호에 따라 넣으면 깊고 구수한 본연의 맛에 칼칼한 신세계가 열린다.

‘장모님해장국’은 꼼꼼하게 선별한 질 좋은 국산 식자재만 쓴다. 이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하다. 고기는 모두 한우인데 서울 성동구 마장동 축산시장에서 매일 떼어온다. 배추, 무, 고춧가루는 모두 국내산으로, 오랫동안 거래한 믿을 만한 채소가게에서 제공받는다고 한다. 오피스가 밀집돼 있는 지역이 아닌데도 오전 6시부터 문을 여는 것도 이채로운 대목이다. 아마도 아침 산행을 시작하기 전 든든하게 배를 채우려는 등산객들을 고려한 포석일 것이다.

‘장모님해장국’은 술꾼들에겐 술맛집으로도 소문이 자자하다고 들었다. 차림표를 보면 그 이유를 금방 알 수 있다. 수육부터 양무침, 간천엽, 전병에 심지어는 두부김치까지 술맛을 돋우는 안주들이 즐비하다. 이것들을 모두 맛본 적 있는 나로서는 이 집을 해장국집으로 한정하는 데 동의하기 어렵다.

그런데 말이다. 현실 속에서 장모님이 사위에게 끓여주는 해장국에는 어떤 마음이 담겨 있을까. 이 집에서 해장국을 떠먹은 사내들은 쓰린 속이 풀리는 각성과 함께 이런 장모님의 목소리를 들었을지도 모른다. “O서방, 술을 그렇게 자주 마시면 쓰나. 우리 딸, 속 썩는 꼴 나는 못 보네. 해장국, 천천히 그리고 양껏 먹고 우리 딸 많이 아껴주게나.” 이 집은 술꾼 사위들의 고해소일지도 모른다.

#도언의 너희가 노포를 아느냐#해장국#장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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