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초코파이 취식’ 재판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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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한 물류회사에서 협력업체 소속 경비원으로 일하는 A 씨는 절도죄로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현재는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지난해 1월 18일 오전 4시경 순찰을 돌던 중 이 물류업체 사무실 냉장고에서 450원짜리 ‘초코파이’ 1개와 600원짜리 ‘카스타드’ 1개를 꺼내 먹은 것이 ‘죄’였다. CCTV를 통해 A 씨가 간식을 꺼내 간 것을 확인한 회사 측이 112 신고를 하면서 현재까지 1년 8개월에 이르는 길고 긴 송사가 시작됐다.

A 씨는 “평소 이 회사의 탁송 기사들이 냉장고에 간식이 있으니 먹어도 된다”고 해 먹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회사 측은 “탁송 기사들도 냉장고를 함부로 열지 않고, 초코파이와 카스타드를 먹을 때는 사무직 직원들의 허락을 받고 꺼내 간다”며 A 씨의 행위는 명백한 절도라고 맞서고 있다. 경찰에는 “도난품의 회수나 변상을 원치 않고, 처벌을 원한다”고 했다.

회사 측이 이렇게까지 한 구체적인 사연은 알려져 있지 않다. 양측 간에 누적된 갈등이나 불신, 제삼자는 모르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경비원이 회사를 순찰하다 배가 출출한 새벽 시간에 과자 한두 개 꺼내 먹은 것이 꼭 형사처벌을 해야 할 일인가. A 씨 본인에게든, 그가 소속된 협력업체에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엄중하게 경고를 하는 것으로는 부족했나.

경찰도 경찰이고, 검찰도 검찰이고, 1심 법원도 법원이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고, 검찰은 벌금 5만 원에 약식명령을 청구했다. 경비원이 이에 불복해 정식 재판을 청구하자 1심 법원은 절도가 인정된다며 벌금 5만 원의 유죄판결을 내렸다. 재판에선 절도냐 아니냐를 가리겠다며 CCTV 분석까지 이뤄졌고 여러 직원이 법정에 불려 와 증언해야 했다. 1050원어치 간식을 취식한 것이 이렇게까지 해가며 시비를 가릴 일인가.

경찰이 A 씨와 회사 측을 화해시킬 방법은 없었나. 검찰은 이런 노력을 해봤는가. 기소를 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하는 방법은 없었나. 1심 법원은 꼭 A 씨에게 유죄 판결을 내려야 했나.

아직 40대 초반인 A 씨는 이 일로 회사에서 해고가 될지도 모르는 처지라고 한다. 최종적으로 유죄판결을 받으면 재취업에 큰 걸림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A 씨는 벌금 5만 원을 내는 대신 그 수백 배에 이르는 변호사 비용을 써가며 무죄를 다투고 있다. 경제적 비용과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비단 A 씨뿐이겠는가. 그 사회적 비용이 대체 얼마인가.

최근 시작된 항소심 공판에서 재판장은 “사건을 따지고 보면 450원짜리 초코파이랑 600원짜리 카스타드를 가져가서 먹었다는 거다. 각박한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며 헛웃음을 보였다고 한다. 비단 항소심 재판장뿐이 아닐 것이다. 야간 순찰을 도는 경비원을 위해 손이 잘 닿는 곳에 간식거리를 준비해 놓고 마음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오랜 인정 아니었나. 어느샌가 사회적 갈등을 중재하고 해결해야 할 정치권조차도 자신들의 문제를 대화나 타협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사사건건 고소·고발을 통해 법정으로 가져가는 것이 우리 사회의 ‘상식 아닌 상식’이 돼 버렸다. 1050원짜리 초코파이 취식 재판은 그런 가운데서 벌어지는 또 하나의 씁쓸한 우리 자화상일 것이다.



#경비원#절도죄#초코파이#카스타드#사회적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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