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캐나다 의사들을 만나 응급환자 표류 문제를 취재했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캐나다 2.8명, 한국 2.6명으로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캐나다에선 중증 응급환자가 병원을 전전하는 일이 드물다. 의사들이 피부미용 분야에 쏠려 수술실이 텅 비는 일이 없다는 얘기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했다.
“캐나다에선 피부미용이 돈이 안 되나 보죠?”
“아뇨, 많이 법니다. 그런데 왜요?”
서로 어리둥절한 채 잠시 정적이 흘렀다. 스콧 뱅크스 캘거리대 응급의학과 교수가 정리했다. “만약 의사 대부분이 돈 되는 과만 고른다면, 그건 의대생을 잘못 선별한 탓입니다.” 그리고 이어진 질문. “한국은 성적만 보나요? 의사가 되려는 이유는 묻지 않나요?” 낯선 물음이었다.
분명히 짚고 가는데, 이 글은 의대생을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이미 힘든 길을 택한 이들이다. 다만 바른 나침반을 건네는 건 사회의 몫이다. 입시는 직업윤리의 예고편이다. 시험이 기억력과 속도만 물으면 그 능력만 자란다. 한편 “왜 이 길을 택했으며, 누구를 위해 일할지”를 물으면, 다른 근육도 함께 자란다. 현대 의학의 아버지 윌리엄 오슬러의 말처럼 “병 넘어 환자까지 치료”하기 위해 필요한 감각 말이다.
캐나다와 미국, 영국의 의대는 성적이 아무리 우수해도 봉사활동과 지역사회 경험이 부족하면 합격할 수 없게 설계됐다. 특히 캐나다의 많은 의대가 인성검사(CASPer)를 비중 있게 본다. 집중면접(MEM)에선 단순 암기로는 대비할 수 없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일손이 부족하면 누구를 먼저 치료할지” “치료를 거부하는 환자를 어떻게 설득할지”와 같은 윤리적 딜레마를 제시하며 학생이 갖춘 철학을 보는 식이다. 몬트리올대 의대는 1차 선발에서 인성검사를 40% 반영한다. 최종 단계는 100% 집중면접이다.
한국 의대는 성적 중심이다. 면접도 있지만, 대체로 답을 외워서 대비할 수 있는 수준이다. 사회적 책임 의식을 제대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반영 비율도 5∼20%로 형식에 가깝다.
서울대 의대가 최근 내놓은 커리큘럼 개편안은 이런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2027년 1학기부터 ‘팀 스포츠’ ‘지역의료 실습’ 등 과목을 신설해 포용과 공감, 희생 의식을 키운다는 계획이다. 김정은 학장은 본보 인터뷰에서 “의정 갈등을 겪으며 지식 전달을 넘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꼈다. 살면서 받은 혜택과 의사에게 부여된 특권을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는 자각을 교육에 녹여내겠다”고 말했다.
서울대의 변화는 출발점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의대생 선발 기준부터 돌아볼 때다. 의정 갈등을 거치며 정책 혼선뿐 아니라 환자를 두고 떠나는 의사의 뒷모습에도 크게 실망한 사람들이 많다. 이제는 선발 때부터 “환자와 사회를 위해 헌신할 준비가 됐는지”를 물으면 어떨까.
여기에 스스로 답해 본 사람은 같은 지식을 배워도 다른 길로 걸어간다. 그 답을 흰 가운에 새긴 이들이 많아질 때, 의정 갈등의 상처도 비로소 아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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