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홍의 스포트라이트]월드컵 본선 참가국을 64개국으로 늘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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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카타르 월드컵 결승전이 열렸던 루사일 스타디움과 조형물. 카타르는 월드컵 개최 비용으로 역대 최대인 282조 원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일보DB
2022 카타르 월드컵 결승전이 열렸던 루사일 스타디움과 조형물. 카타르는 월드컵 개최 비용으로 역대 최대인 282조 원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일보DB
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월드컵 본선 참가국을 64개국으로 늘리자는 의견이 제기됐다. 대통령들까지 가세했다. 실현된다면 누가 가장 이득일까.

23일 미국 뉴욕에서 남미축구연맹 회장인 알레한드로 도밍게스가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과 만났다. 산티아고 페냐 파라과이 대통령, 야만두 오르시 우루과이 대통령도 함께했다. 2030년 월드컵 본선 참가국을 64개국으로 늘리자고 주장하기 위해서였다.

월드컵은 확대 일로를 걷고 있다. 1982년 본선 참가국을 16개국에서 24개국으로, 1998년에는 다시 32개국으로 늘렸다. 내년부터는 48개국으로 늘어난다. 그런데 2030년에 64개국으로 더 늘리자는 의견이 나왔다.

원래 2030 월드컵은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에서 열기로 했다. 여기에 1930년 우루과이에서 제1회 월드컵이 열린 후 100주년을 맞는 것과 남미 국가들이 월드컵에 기여한 것을 기념해 우루과이 및 파라과이, 아르헨티나에서도 1경기씩을 열기로 했다. 그러자 남미 국가들이 판을 키우려고 나섰다. “월드컵 100주년을 평범하게 넘길 수 없다”는 명분을 내세워 전 세계 여러 국가들을 대규모로 참가시켜 축제 분위기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들의 속셈은 이를 통해 최고의 정치 경제적 ‘가성비’를 챙기는 데 있다. 64개국으로 늘어나면 지금까지의 32경기 체제에서 벌어졌던 64경기의 두 배인 128경기가 열린다. 지금까지는 4개 팀씩 8개조가 조별리그를 치렀지만, 4개 팀씩 16개조가 조별리그를 펼치게 된다.

이렇게 늘어나는 경기는 개최국들에 막대한 추가 비용이 들게 하고 주어진 일정을 소화하기 힘들게 만든다. 월드컵 개최국들은 정치 경제 사회적 심리적 효과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월드컵을 유치한다. 하지만 불분명한 간접 효과를 제외하고 투자 비용과 이익을 대비하는 순수 회계 장부상으로는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개최 비용은 5억 달러(약 7050억 원)였지만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개최 비용은 2000억 달러(약 282조 원)에 달했다. 월드컵 개최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증가했지만 수익은 그에 못 미치고 있다. 스위스 로잔대 연구팀이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이후 2018년 러시아 월드컵까지 14번의 월드컵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 중 러시아 월드컵 한 차례만 빼면 모두 적자였다. 평균 10억 달러(약 1조4100억 원) 손실을 보았고, 평균 투자수익률(투자 비용 대비 이익·ROI)은 ―47%에 달했다. 사상 최대 비용을 쏟아부은 카타르 월드컵도 적자일 게 분명하다.

남미 국가들은 이 점을 이용하려고 한다. 판을 키우면 개최국들이 이를 모두 감당할 수 없어 개최 장소를 더 분산시킬 것이다. 이들은 “조별리그를 분산 개최할 수 있다”고 나서고 있다. 조별리그 1개조만 유치하더라도 기본 6경기를 치른다. 추첨 결과에 따라 최고 인기 팀들을 배정받을 수도 있다. 조별리그만 치르려는 이들로서는 경기장을 새로 짓거나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지는 않지만 적은 비용으로 월드컵 공동 개최국으로서의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킬 수 있다. 이들 국가의 국민들 대부분이 축구광 팬들이기에 그 정치적 효과는 극대화될 것이다. 또 이들 국가의 경제력으로 볼 때 향후 언제 월드컵 개최 기회를 잡을지 알 수 없다. 이들에겐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현재로선 반대 의견이 압도적이다. 선수 혹사, 경기 수준 저하 등이 반대 이유다. FIFA는 의견을 검토해 보겠다는 원칙적인 입장만 보였다. 그렇다고 적극적인 반대는 하지 않고 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주기(2019∼2022년)에 FIFA는 총 75억 달러(약 10조5750억 원)의 사상 최대 수익을 기록했다. 개최국들의 적자에도 FIFA의 이익은 늘어만 가고 있다. 이는 TV 중계권 및 마케팅 권한 등 핵심 수익 사업은 틀어쥐고 있으면서 경기장 건립 등 개최 비용은 대부분 개최국에 떠넘겨 왔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있다. 월드컵 본선 참가국이 늘어나면 개최국의 부담은 늘어나겠지만 TV 중계권료 및 마케팅 수익은 더 늘어난다. 2030년까지의 준비 기간이 짧기에 판을 새로 짜야 하는 이 안건은 추인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월드컵 참가국 증대’라는 안건 자체는 언제든 다시 제기될 수 있다. 결국 구조적으로는 FIFA에 가장 유리하기 때문이다.

#월드컵#본선 참가국#64개국#FIFA#남미축구연맹#2030년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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