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프로축구 LAFC의 손흥민이 지난달 27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미국 프로야구 LA 다저스와 신시내티 레즈의 경기에 앞서 시구한 뒤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P 뉴시스
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손흥민이 만드는 스포츠 한류와 케이팝이 만드는 한류가 만나 새로운 회오리를 일으키고 있다.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스포츠와 대중문화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한 한류의 흐름이 치솟고 있다. 미국 프로축구 로스앤젤레스 FC(LAFC)로 옮겨간 손흥민은 말 그대로 ‘손흥민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LAFC 관련 콘텐츠 조회 수는 594% 폭증했고, 경기 티켓은 매진됐으며 유니폼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손흥민은 세계 스포츠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스포츠 왕국’ 미국에서 상대적으로 덜 성장했던 축구계에 새바람을 일으키며 성장의 마중물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한국 문화를 소재로 삼고 있는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가 일으키고 있는 문화 현상 역시 열풍이라는 표현 그대로 뜨겁다. 케데헌은 넷플릭스에서 역대 가장 많이 시청한 작품 1위에 올랐고 ‘골든’을 비롯한 케데헌 속 음악들은 미국과 영국의 음악 차트 상위권을 휩쓸고 있다.
손흥민은 지난달 27일 미국 프로야구 LA 다저스의 홈경기에서 시구를 했는데, 이에 앞서 25일에는 같은 장소에서 케이팝 스타 방탄소년단(BTS)의 뷔가 시구를 했다. 둘이 같은 공간에서 시구를 하는 모습은 스포츠 한류와 케이팝 한류가 겹치는 장면이었다. 가장 미국적인 것을 대표하는 프로야구 무대에서 펼쳐진 이러한 모습은 지금 미국에서 한국 스포츠 스타와 케이팝 스타가 얼마나 기꺼이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손흥민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프로축구 무대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득점왕에 오르면서, 아시아인도 축구의 정점에 설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케데헌을 비롯한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 가요들은 세계인의 정서적 측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현 단계에서 손흥민과 케이팝은 한국 문화의 육체적 정서적 자신감을 상징한다. 두 요소가 일으키고 있는 회오리는 상승 효과를 일으키면서 한국에 대한 주목도와 이미지를 상승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에만 너무 취해 있는 것은 우리 스스로의 눈을 멀게 할지도 모른다. 손흥민의 미국 프로축구 데뷔 배경에는 성장이 필요한 미국 축구 시장이 한국과 아시아계의 팬들을 흡수하기 위해 끌어들인 전략적인 요소가 있을 것이고, 케데헌의 배경에는 새로움을 추구하는 미국 대중문화 자본이 참신한 소재를 찾는 과정에서 한국적인 것을 선택한 점도 있을 것이다. 이럴 경우 그들은 한국과 관련된 효용이 다하면 얼마든지 새로운 대상을 찾아 움직일 수 있다. 우리가 그들의 필요에 따라 단기 소재로 사용되는 것이 아닌, 우리가 주도적으로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주체적 역량을 기르고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33세의 손흥민은 은퇴를 향해 가고 있다. 그의 은퇴 후에 한국은 제2의 손흥민을 탄생시킬 수 있을까. 그의 성장이 끝없는 개인훈련과 초인적인 자기 극복의 과정이었음은 잘 알려져 있다. 누군가의 성공에는 반드시 개인의 노력이 있어야 하지만, 그 성공을 더 뒷받침하고 이끌어 줄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지금 한국 축구의 난맥상을 보면 개개인의 노력에 덧붙여 날개를 달아줄 것 같은 느낌은 잘 들지 않는다. 더불어 한류 작품 속 사회의 아픔과 고난을 극복해 가는 내용도 눈길을 끈다. 경쟁 사회의 살벌함을 그린 ‘오징어 게임’이나 개인의 내면적 아픔을 딛고 나아가는 ‘골든’의 가사는 우리를 둘러싼 고통과 그 극복에 대한 묘사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그러한 작품들의 성공은 세계 누구에게나 전달될 수 있는 절절한 아픔을 우리가 안고 살아왔고 그것들을 표현한 것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스포츠든 문화든 어떤 분야와 형식을 통해 표현되든지 간에 우리 사회에는 많은 문제들이 있는 건 사실이고, 우리는 이의 극복과 치유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한류 열풍을 둘러싸고 많은 이들이 보이는 반응 중 하나는 우리의 이런 문화적 저력에 대비되는 우리 내부의 문제 해결 능력에 대한 아쉬움이다. 그중 대표적인 것으로 “정치만 잘하면 된다”는 반응이 있다. 정치권은 이런 한류의 저력과 열풍이 결코 정치를 잘한 덕분이라고 착각하거나 내세우지 말라. 오히려 지금 국민들이 안타까워하는 것은 이런 저력과 역량을 지닌 국민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천박하고 무능력한 정치권의 행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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