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빈말 된 “기업인 증인 채택 자제”… ‘병풍 세우기’ 구태 언제까지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0월 1일 23시 27분


코멘트
국감 자리 맡으려 사다리까지 동원
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 4층 대기공간 책상 위에 사다리와 수레 등이 올려져 있다. 13일 시작되는 국정감사에 앞서 정부 부처 등 피감기관 관계자들이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올려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경제신문 제공
국감 자리 맡으려 사다리까지 동원 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 4층 대기공간 책상 위에 사다리와 수레 등이 올려져 있다. 13일 시작되는 국정감사에 앞서 정부 부처 등 피감기관 관계자들이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올려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경제신문 제공
13일 시작하는 국정감사를 앞두고 기업인들을 무더기로 증인으로 소환하는 구태가 여야 가릴 것 없이 올해도 반복되고 있다. 1일 현재 12개 상임위원회에서 기업인 166명을 증인으로 채택해 역대 최대였던 지난해 159명을 이미 넘어섰다. 증인이 확정되지 않은 상임위가 5곳이나 돼 더 늘어날 수 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야당 때처럼 기업 총수를 국감 증인으로 마구잡이 신청하지는 말자”고 했고, 국민의힘 지도부도 “무분별한 증인 채택을 자제하자”고 했지만 빈말로 그친 것이다.

2020년 63명이던 기업인 증인은 2021년 92명, 2022년 144명 등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도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 회장 등 기업 총수를 비롯해 주요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줄줄이 증인으로 채택됐다. 특히 최 회장은 이달 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앞서 열리는 APEC CEO 서밋의 의장인데, 행사장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대신 국감장에 서야 할 상황이 됐다. 통신업계에선 이동통신 3사 CEO가 모두 불려 나오고, 건설업계에선 10대 건설사 중 8개 회사가 명단에 포함됐다. 한 회사에서 대표와 임원이 줄줄이 소환되고, 여러 상임위에서 중복해서 불러 ‘겹치기 출석’을 해야 하는 기업인들도 있다.

국정운영 전반을 감시하는 국회 국정감사에서 관련 현안이 있는 기업인을 출석시켜 의견을 들을 순 있다. 문제는 일단 부르고 보자는 식으로 마구잡이로 소환한 뒤 장황한 훈시를 늘어놓거나 호통을 치는 ‘망신 주기’ ‘군기 잡기’로 흐른다는 점이다. 일정이 촉박한데도 과도하게 많은 증인들을 불러놓고 병풍처럼 세워 놓은 경우가 허다했다. 기업인을 일단 증인으로 채택한 뒤 나중에 명단에서 빼주는 대가로 기업 측에 지역 민원을 요구한 사례도 종종 있었다.

숨 가쁜 글로벌 경쟁 속에 분초를 다투는 기업인들을 무작정 불러 몇 시간씩 대기시키는 것은 국가 차원에서도 낭비다. 경영 활동에 지장을 주고 기업인들의 사기를 꺾을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한국 기업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국회가 내수 불경기와 관세 압박 등 안팎으로 시달리는 기업들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언제까지 이렇게 발목 잡기만 골라서 할 것인가.


#국정감사#기업인 증인#CEO 소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